1.

밀크 화이트는 알 카포네가 진짜 사람인지, 아니면 무슨 시카고 농담 같은 존재인지 헷갈리곤 했다.
그는 빳빳한 정장을 입고 오는 날도 있었고, 그냥 가운에 슬리퍼 차림으로 2층에서 내려와서는 에스프레소를 다섯 잔 연속 들이키며 “오늘도 살아 있군...”이라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늘, 밀크를 보며 때때로 뭔가를 잊은 얼굴을 했다. 그건 자주 볼 수 있는 눈빛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을 오래도록 기억하려는 집요한 눈빛 같기도 하고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난듯한 눈빛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눈빛의 의미를 알기도 전에, 분명 밀크 화이트는 총을 세 발 맞고 죽었다. 등 뒤에서 날아든 총알에 맞아, 자신이 일하던 위스키 바에서, 바로 알 카포네의 눈앞에서 죽었다. 이때 밀크 화이트는 열일곱 살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열일곱 살을 46번째 살아내는 중이었다. 소년은 47번째 저녁으로 돌아왔다. 손에는 양말에서 꺼낸 지폐 한장, 돈 될 만한 것들이 모조리 소매치기 당해 가볍기만 한 몸, 점점 고파오는 배가 현실을 말해줬다. 그리고, 심장이 외치고 있었다.

"여긴...그래, 다시 시작이야."

자신이 다시 첫 출근날로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단 5분이 걸렸다. 그리고 그보다 빠르게 떠오른 건, 마지막 순간에 카포네가 남긴 말이었다. 

"밀크, 너는 내게 하나뿐인 존재야. 날 기억해야 해."

죽어가는 사람에게 기억하라느니 하는 말은 역시 이상했다. 이 끝없는 회귀에 대해 대부님은 아는 바가 있었던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동안 발은 착실히 걸어서 밀주를 파는 위스키 바, 아니 샌드위치 가게에 도착했다. 여전한 간판, 환영의 말이 쓰여있는 발매트, 반질반질하게 낡은 마룻바닥, 건물 특유의 냄새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새로 시작하는 마당인데, 하고 밀크는 자조했다. 완전히 똑같은 순간들이 이어졌다. 밀크는 이제 아주 자연스럽게 고무 샌드위치를 깨물고서 문제의 음료수를 마신다.

"읍, 뭐야 이맛은?"

"뭐가?!"

"어 이게 그러니까...공장맛이 나요!"

"너 공장 먹어 봤냐?!"

"동작 그만-!"

 그렇다. 알 카포네가 등장할 때다. 밀크는 2층 계단에서 내려오는 카포네의 물 흐르는듯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유심히 뜯어보았다. 조금이라도 그에게서 회귀의 단서를 얻어 낼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고 간절히 바란다. 안타깝게도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여전히 혀가 마음에 든다는 황당한 이유로 취업하게 되고, 개진상 손님들이 아무리 짖어도 차라리 모두 목장의 젖소라고 생각하며 하하하 웃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2.

 그 중 하루는 카포네가 일찍 퇴근하고 초저녁에 가게로 들어왔다. 그리고 위스키를 한 잔 주문하고서 빤히 밀크를 바라보았다. 또! 마치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을 외우려는듯, 혹은 오래 봐 온 사람을 갑자기 낯설게 느끼는 듯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밀크는 점차 식은땀이 흘렀다. 외면하자니 예의없어 보이고 눈을 마주치자니 5초쯤 지나면 너무 부담스러웠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자신을 보는 것인지 묻고싶었으나, 47번째가 되는 생에서 조차 쉽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러다간 100번째까지 갈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입이 가까스로 떨어졌다.

"대부님은 가끔... 왜 자꾸 저를 쳐다보세요?"

"소년,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나?"

"아뇨. 근데 이번에는 제가 좀 급해서요."

"뭐가 급한데?"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까요."

"그것 참, 소년답지 못한 심각한 말이군. 다 나 때문인가?"

밤에는 마피아들이, 낮에는 수사관들이 쫓아다니는 통에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안좋은 카포네는 매 순간이 몹시 피곤했다. 그는 그런 피로감을 뻔히 드러내면서 크게 하품했다. 이 행동은 밀크 앞에서는 긴장을 조금 풀고 있다는 뜻을 내비치는 것이기도 했다. 눈알을 도륵 굴린 카포네는 밀크를 보며 씨익 웃었다.

"시카고에서는 보통 둘 중 하나야, 폭력적이거나, 섹슈얼한 의미를 담는 눈길이지. 소년."

밀크는 물을 마시다가 목에 걸려서 잔뜩 기침했다. 소년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어느쪽이어도 곤란한데요?!"

"그런가? 하지만 오늘의 경우 둘 다 아닌 예외상황이다."

"그걸 먼저 말씀하시라고요...!"

"너,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거냐. 정체가 뭐야?"

밀크는 순간 얼어붙을 뻔 했다가 가까스로 뭐가 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하면 카포네와의 위기상황 전반을 약30%정도 가능성으로 잘 넘어갈수도 있다는 걸 46번에 걸친 경험적 자료가 뒷받침 해 주었다.

"네? 뭐가요?"

"내 커피 취향부터 내 사소한 버릇, 내 걸음걸이, 내 동선과 호흡 까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넌 뭐냐고."

"저야 대부님 최측근 아닙니까, 당연히 알아야죠!"

"아니, 왜 내가 가르쳐준 적 없는 걸 알고 있냐는거야." 

밀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집요함은 또 처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46생을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없던 흐름이었다. 카포네가 먼저 의심하면서 정색한 눈으로 질문한 적도 없었다. 단순한 불안 요소가 아닌 시간이 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그냥 직감이죠. 역시 대부님과 저는 운명인가봐요."

무슨 말을 덧붙여도 어색하다. 이 분기점을 이렇게 바보같이 넘긴다고? 밀크가 곤란함을 필사적으로 숨기는 동안, 카포네는 갑자기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먹구름이 잔뜩 낀 듯 했다.

"넌 내 동선도 안 가르쳐준 비밀 루트도 알고 있었지."

"아, 전에 무기 배달하러 가시는 거 몇 번 따라갔잖아요. 기억력이 좋은 편이에요."

"내가 담배 피우고 싶을때 꼭 오른쪽 입꼬리만 올라가는 거, 그건?"

"관찰력이 좋은 편이기도 하고요."

"내가 소문 없이 사라질 땐 어디로 가는지도?"

"그건 그냥 짐작이…"

"소년, 넌 거짓말을 못해."

젠장. 이 인간은 왜 47번에 걸쳐서 자꾸 날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지. 밀크는 속으로 욕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믿어주실 건가요?"

"믿어주지. 넌 내 오른팔이니까. 믿지 않는다면 오른팔을 스스로 자르는거나 다름없어."

 

3.

"저 사실, 전생을 기억해요. 지금 우리가 47번째 만나고 있는 겁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 전 이번이 47번째 인생이고, 매번 열일곱살에 이 바에 들어와 일하다가 죽어요. 그 마지막 순간은 항상… 대부님 앞이에요."

카포네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피곤한듯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소년, 그럼 내가 너를 죽인 거냐? 그래?"

"아뇨. 전부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절 죽인 건 대부분...내외부의 마피아와 수사관이었죠."

"그럼 나 때문에 죽은건 맞네."

"아뇨, 그런 말은… 절반만 맞아요."

"절반은 내가 죽였고, 절반은 네 운명 탓이고?"

"정확히는 약 24.5%가 대부님이고, 나머지는 내외부 마피아, 수사관, 옆 테이블에 있던 술 취한 아저씨, 그리고 제 잘못이..."

"퍼센트로 따졌어?"

"아, 넵. 뭐가 많이 반복되다 보면 통계 정리도 하게 되더라고요?"

카포네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눈동자속엔 찌든 피곤과 약간의 분노, 그리고 아주 미세한 욕망까지 얽혀 있었다.

"정리하자. 넌 지금 열일곱 살이다. 그런데 이게 47번째 인생이고, 매번 내가 네 앞에서 네 죽음을 목격했다?"

"네."

"그리고 내가 널 한 번도 구하지 못했다?"

"마음으로는 늘 구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좀 그렇죠."

카포네는 표면이 축축해진 잔속에 남은 위스키를 원샷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 꿈인가? 사실 난 코마 상태인가?"

"그러면 제가 뭐가 됩니까?! 저는 뭘 위해 대부님의 꿈에 등장한거냐고요?"

그가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울렸다. 카포네는 턱을 괴고 밀크를 보았다. 그 눈빛은 이제 더 이상 지독한 의심이 아니었다. 아주 묘한 애정, 책임감, 그리고 아주 살짝 감탄까지 얹은 표정이었다.

"근데 소년, 정말 47번이나 나랑 이 대화했나?"

"아뇨. 이건 처음이에요."

"그럼 왜 갑자기 지금와서, 47회차에 고해를 해?"

"이번엔 뭔가… 흐름이 이상해서요. 그렇게 정색하시는 것도 처음이었고요. 질문도 좀 새로웠고."

"잠깐만, 그걸 정색이라고 생각한 거야? 내가 정색을 했다고?"

밀크는 조금 당황했다.

"아니었어요?"

"눈이 따가워서 심각해보였을 뿐이다. 요즘 잠이 부족해서. 마피아의 숙명같은거지."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이제 뭐 어떡하면 되는건데."

"살아야죠. 우리 둘 다요."

"목표가 심플해서 좋군."

"이번엔 될지도 몰라요. 새로운 분기점이 생겼으니까."

"그런가, 이게 빌어먹을 연극이든 꿈이든, 네가 진짜 무슨 회귀자든 아니든지 간에, 내 인생에 이런 사건이 들어온 이상 대충은 없다."

"네?"

밀크는 새삼 불안해졌다. 대부님이 뭔가를 열심히 하기 시작한다는것은 정말 본격적인 변화를 의미했다. 그 변화가 이 회차에 어떤 변동을 줄지는 모른다.

"47번째 밀크, 네가 죽는 거 절대 못 본다. 오늘부터 밀크 화이트는 조직 내 최우선 방어대상 1호다."

"네?"

"앞으로 가게 내부에 경호인력 배치하지."

"잠깐만요, 네?"

"창문은 모두 방탄유리로 바꾸고. 너도 방탄복 입어."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애초에, 나중에 같이 우유 팔때 까지는 제가 무슨일이 일어날지 다 훤히 알고있으니까 괜찮아요."

"우유를 판다고? 내가? 이 알 카포네가?"

그는 황당하다는듯 짧게 하, 하고 웃음소리를 냈다. 어둠속에서 지낸 오랜 세월이 그런 상상을 방해했다. 그러나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나중에, 위스콘신의 목장으로 숨어든 두 사람은 카포네밀크 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4.

우유 배달원은 속이지 않고, 우유 배달원은 싸우지 않고, 우유 배달원은 언제나 웃는다. 하지만...! 

몇번째인지조차 모르는 분기점에서 밀크는 카포네를 구하기 위해 배탈우유를 만든다. 모든 작전은 계획대로다! 여기까지 밀크가 살아남은 회차는 많지 않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47번째 밀크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우유 배달에 나선다. 

"이게 마지막 우유야.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 회차다..."

밀크는 냉장고를 닫으며 중얼거렸다. 밀크의 눈은 피곤해서 다크써클이 반 뼘은 내려왔고, 저릿저릿한 손은 조금 떨렸다. 누가 봐도 우유 배달 가방이었지만, 그 안엔 전설적인 무기 <밀크의 밀크 - 초고속 설사 유도 우유★>가 장전되어있다. 이건 표면상으로는 우유지만, 단 한 모금이면 인체의 내장기관이 급격하게 무너진다. 카포네를 잡아간 악당 디 언터쳐블이란 악명의 엘리엇 네스와 노스 사이드 갱의 보스 벅스 모란에게 설사약이 든 우유를 배달하고,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화장실에서 스스로와의 싸움을 벌일때! 바로 그때 카포네를 이 밀크화이트가 구출하는 거다.

두사람이 꾸르륵대며 화장실로 달려갔을때, 밀크는 재빠르게 열쇠를 집어 철창을 열었다. 그 안에, 수갑에 묶인 채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있다. 빳빳한 정장 셔츠가 잔뜩 구겨져 있고, 머리는 헝클어져있거, 얼굴은 주먹으로 맞았는지 푸른 멍이 부어올랐고, 표정은 피곤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이다.

"소년?"

"대부님, 구하러 왔어요!"

"너 무슨 일이야, 이런 행동 하면 너까지 위험해져!"

"보자마자 하는 말이 고작 그거에요?"

"그리고 왜 우유 배달원 복장이냐? 내가 맞춰 준 정장은 어쨌어?"

"혹시나 해서 정체 위장용이에요. 경호원들이 설사 중이거든요."

철창 신세를 벗어나 밖으로 나와보니 심히 좋지 못한 냄새가 진동했다. 갇혀 있는동안 여러모로 고생한 카포네는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 그러면서 코를 찡긋 찌푸렸다.

"소년, 이건 대체 무슨 전술이지?"

"배탈우유 작전이요! 우유 배달원은 속이지 않지만, 저는 우유배달원이기 이전에 아저씨의 형제니까요!"

두사람은 뒤돌아보지 않고 마구 달렸다. 등 뒤로는 엘리엇 네스의 절규가 들려왔다.

"널! 반드시! 체포...으으으...하아아..."

그리고 벅스 모란의 묵직한 후회가 뒤따랐다.

"아으으...공복에 우유는... 아니었어..."

밖으로 나와서 탑승한 도주용 트럭엔 냉장 우유 통이 실려 있었고, 카포네는 그 통 안에 몸을 숨겼다. 밀크는 앞좌석에서 핸들을 잡고, 시카고의 소음들과 함께 미친듯이 웃으며 외쳤다.

"하하하하하, 47번째 인생, 살아서 탈출 성공!"

카포네는 우유통 안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쩌다 애가 저렇게 된건지...다 내 인생의 업보인가."

"47번쯤 살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유제품으로 국가전복도 가능하거든요."

"하지만 또 회귀하면?"

"그땐 우유에 바이러스를 넣게요."

"내가 하얀 호랑이 새끼를 길렀군..."

두 사람은 그렇게 무사히 도망쳤다. 그러나 47회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카포네 또한 곧 무한 회귀의 기억을 되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밀크가 웃었고, 카포네는 살아있다. 그러니 어떤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두 사람이 함께하는 한 괜찮을 것이다.

 

 

 

 

  • 리퀘 내용: 밀크포네 주세요. 순애물이면 좋은데.. 사실 그냥 포인트 드리려고 신청하는거라 부담 안가지셔도 됩니다. 
  • 사담: 너무 길어질것같아서 뒷 내용을 안쓰고 잘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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