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0. 💭
무장탐정사 기숙사는 모두가 간략한 구조의 작은 방이었다. 특히 다자이의 방에는 별로 갖춰둔 살림이 없어서 더 단출했다. 그런 방안에 혼자 누워서 엷은 비늘무늬 얼룩이 진 천장따위를 바라보고 있자면 심심한 기분이 들게 된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행동은 누구나 별 생각 없이 단순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그는 핸드폰을 들어 단축키 1번을 눌렀다. 귓가에 전화를 대며 한 무의식적인 기대와는 다르게, 신호가 가는 소리가 아닌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십시오.’ 따위의 안내 음성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죽은 듯이 눈을 감고 다시 잠들기를 기다렸다.
1. ⛲
햇살이 길게 떨어지는 봄날 오후, 한가로운 거리의 가게에서 유행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값싼 라디오를 타고 불분명하게 들려오는 가사는 온통 사랑 타령이었다. 잠시 걸었을 뿐인데 조금 전의 총성과 비린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런 풍경이네, 하는 생각에 입가에 조소를 흘리는 소년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앳된 얼굴 탓에 교복처럼 보이는 검은 정장 차림을 한 시절의 그, 포트 마피아의 간부인 다자이다. 터덜터덜 걷는 발걸음 앞에 길바닥을 서성대던 비둘기들이 포르르 날아올랐다. 개중 한 마리는 다친 모양인지 바닥에서 뒤뚱거리며 꾹꾹대기만 했다. 다자이는 그런 모습을 뚱하게 흘겨보고선 갈 길을 재촉했다. 이제 그의 일거리는 실질적으로 끝났지만 한 가지 남겨둔 귀찮은 일정이 있었다. 작전 성공을 보스에게 보고해야 했다. 그건 평소라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고 말 일이었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막바지에 약간의 사고가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총격전 후에 살아남은 부하들이 정적 속에서 시원한 봄바람을 느끼고 있는 순간이었다. 다자이는 시체와 잔해가 뒤섞인 어지러운 바닥에서 위로 정조준을 하려 애쓰느라 떨리는 손을 누구보다도 먼저 발견했다. 그 떨림에서 전해지는 섬뜩섬뜩한 기대감에 심장이 잔뜩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 직후, 손에서 조각난 전화기가 튀어오를 때에는 그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마지막 생존자가 확인 사살당하는 소리를 듣고 소풍이 취소된 어린아이처럼 부루퉁한 얼굴을 했다. 뒤처리는 부하에게 맡긴 채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 나오며, 바닥에 누운 시체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어서 동전 두 개를 빼낸 게 10분 전이다.
다자이는 잠시 거리에서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펴보다 마침내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섰다. 동전 하나를 넣고 보스 집무실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가 기억하는 건 당연하지마는 도리어 외우고 있다는 것에 기분 나빠하며 수화기를 귀에 가까이한다.
“…”
연결음을 기다릴 새도 없이 바로 전화를 받은 보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다자이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끝났어……. 쉬어야겠어.”
별다른 일도 없는데 구태여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싶지는 않았다. 아직 퇴근 시간이 아니라 주위는 꽤 한적했지만, 그래도 길에서 범죄 사실을 줄줄 흘릴 수는 없다는 핑계도 있었다. 전화기 옆의 헝클어진 거미줄을 보면서 딴생각을 하고 있자니 잠깐 사이에 표시기의 숫자가 줄어들고 전화기가 삐, 삐, 하고 울렸다. 공중전화란 원래 용건만 간단히 말하라고 만들어진 물건이다.
“수고가 많네, 다자이군. 내일 중으로 연락처를 남겨주게. 알겠지?”
수령은 한순간에 상황 파악이 끝난 모양이었다. 오늘따라 더 다정한 목소리로 자상한 척을 하는게 듣기 싫고 귀찮기만 했다. 전화 시간은 5초도 남지 않았는데 그는 구태여 수화기를 짤각, 하고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바짝 조였던 정신이 스르르 이완되고 전화부스 안으로 비껴 들어오는 봄 햇살이 감미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때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길 건너편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행인도 조금전의 다자이와 유사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수염이 아래턱에 가슬가슬 남아있어 허술한 인상의 남자다. 붉은 머리카락에 늦은 오후의 햇살이 금빛으로 부서져 내린다. 그 아래로 다자이가 아는 얼굴이 있었다. 포트 마피아의 만능 말단, 오다 사쿠노스케다. 그는 길을 건너서 다자이가 있는 전화 부스로 다가가고 있었다. 다자이는 전화부스의 문으로 점점 다가오면서 선명해지는 오다의 얼굴, 조금 찌푸린 눈썹과 굳은 입가를 보면서, 그가 자신을 발견하고서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오다와의 거리가 두어 걸음 남자 그는 기다리지 못하고 벌컥 문을 열고 말았다.
“아, 오다사쿠”
“다자이?”
오다는 정말로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자신을 보고서 다가온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전화하러 온 것임을 깨닫게 만드는 순간이다. 돌이켜보면 나를 눈치채지 않았다는 신호가 명백했던 것 같은데 왜 이런 착각을 했지? 그런 생각을 하면 정신이 어지러웠다.
“자넨 어쩐 일로 여기 전화를 하러 온 거야?”
오다가 내려다본 다자이는 어딘가 답답한 표정이었다. 오다가 보기에 그건 무언가 실망스러운 듯 보이기도 했다. 그저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안부 전화를 할 시간이라 여기 왔다만….”
“오다사쿠, 설마 자네 휴대폰이 없나? 아니면 보안에 철저한 편?”
“…”
평소라면 바로 대답할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또 무슨 곤란한 생각을 떠올리는지 우물쭈물 망설인다. 다자이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약간 미안한 마음 반, 이상한 즐거움 반으로 속이 어수선해져선 빙글거리는 미소를 감추기가 힘들었다.
“갈매기에게…. 빼앗겼다.”
“에,”
한참을 기다렸다 나온 뜻밖의 대답에 그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지?”
다른 사람도 아닌 천의무봉을 가진 오다사쿠인데,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다. 오다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엊그제 부두에서 짐을 옮기는 일을 하면서 떨어졌는데, 잠시 그대로 두고 돌아보니 없더군….”
다자이는 그가 지난 일을 회상하는 표정을 보고선 점점 더 크게 웃었다. 말만 들어도 멀어지는 갈매기를 어쩔 줄 모르고 바라보는 뒷모습이 떠올라 보였다. 오다는 속으로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면서도 즐거워하는 다자이의 얼굴을 보며 안도했다. 방금 전화부스의 창밖으로 본 그는 굉장히 피곤하고 지친 얼굴이었다. 밤이 아닌, 눈이 부신 일광 아래서 이렇게 직시하자니 표정을 세심하게 살필 수 있다. 다자이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웃음을 멈추고 큼큼하고 헛기침을 했다.
“흠, 조직의 일원으로서 연락 두절은 곤란하지. 특히 자네 같은 요주의 인물은.”
“그런가.”
그는 사람을 죽이지 않으니 때때로 조직원들 사이에선 배신자라고 곡해되어 난감할 적이 있었다. 그런 처지에, 최연소 간부의 억지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것으로 의혹을 별 탈 없이 무마하곤 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업무용 통신수단을 만들 필요가 있겠지? 간부의 감독 아래서.”
다자이는 과장되게 엄숙한 척을 하면서 오다를 이끌고 휴대전화 매장을 향해 앞섰다. 신난듯한 발걸음을 따라 매장으로 들어서며 오다는 혹시라도 거절할 명분이 없는지 머릿속을 뒤적였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 근방의 가게는 모두 마피아의 입김이 작용하는 곳이다. 다자이가 점주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씨익 웃는 게 보였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휴대폰 커플 요금제를 신청하게 되었다.
2. 🍛
“오다사쿠, 헤어지자.”
오다는 간만에 생긴 휴일 아침부터 느긋하게 커피콩을 갈고 있었다. 원래라면 온갖 잡일에 휘말릴 시간이었는데 이날은 부엌 먼지마저 평소보다 조용했다. 그런 평온함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의 고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던 중에 울린 진동 소리를 듣고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니 그건 마침 다자이로부터의 전화였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받자마자 한다는 말이 ‘헤어지자’라니, 수수께끼 같은 말이다. 그가 무언가 목숨이 위험한 일을 앞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건 무슨 뜻이지.”
“시치미 떼지 마, 나 같은 조강지처를 두고 바람을 피우다니 당신이 나빴어.”
목숨이 위험한 건 아닌 모양이다. 그저 또 이상하고 장난스러운 상황극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전화기를 귀와 어깨 사이에 끼고 드리퍼에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애초에 사귄 적도 없다만 하고 대답하면, 다자이는 나의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력이 0점이라고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오다는 어떤 대답을 할지 잠시 고민한다.
“그건 오해다.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은 없어.”
“그런데 왜 연락 한번이 없어? 역시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 거야.”
언젠가 일 때문에 함께 들른 전파상에서 본 tv 속 새침데기 흉내를 내는 다자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이 드라마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뭘까.
“그건 미안하군.”
그는 식빵을 토스터에 넣으며 최대한 주눅든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다. 하면 할수록 연기에는 영 소질이 없다는 것을 처참하게 느꼈다.
“미안하면 다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반면 다자이의 연기는 꽤 수준급이었다. 수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과장된 연기톤이긴 했지만, 들을수록 다자이는 배우에 소질이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말하자면 오다는 진짜로 연인에게 추궁을 받는듯한 곤란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화내지 말아줘. 내가 사랑한다는 걸 알잖아.”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이 어색하게 입안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급하게 뒤적거린 오래된 대중신문 속 연애소설에 쓰여있는 대로 뻣뻣하게 따라 읽는 것뿐인데 너무 어려웠다. 전화로는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그사이 토스터에서 노릇노릇한 빵이 튀어 올라왔다.
“휴우…….”
다자이는 길게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연기인지 정말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고도 마치정말로 화난 것처럼 한참을 말이 없었다. 오다는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긴장감에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총탄성이 귓가를 스칠 때도 이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커피로 목을 축이고 다음 대사를 짜낸다.
“뭔가 마,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와.”
그는 이때 살면서 처음으로 혀가 꼬여서 말을 더듬었다. 스스로가 약간 한심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면서 허공으로 시선을 굴렸다. 김이 오르는 커피잔, 바닥의 신문지 한 뭉치와 그 위의 뿌리채소, 눈을 돌리다 시선이 닿은 부엌에 난 작은 창에 얼빠진 얼굴이 비쳤다.
“오다사쿠. 이제 연기는 그만해도 좋아….”
“그래.”
“그래도 맛있는 건 먹으러 갈 거야.”
“그래….”
“어라, 정말 가도 괜찮은 건가?”
상황극으로 쏙 빠져나간 오다의 혼이 대답하면서 차차 돌아왔다. 그는 약간 식은 커피를 들이켰다. 돌아온 정신으로 생각해보니 프리덤의 아저씨가 남는다며 준 채소들을 다 소비하려면 사람이 더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카레라도 괜찮다면 시간 날 때 와라. 많이 만들 거니까.”
“좋아! 그럼 오늘 일정은 취소하도록 할까.”
오다의 수화기 너머로 멀리 다자이의 파트너가 벌컥 역정을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뭘 하는 중인지 배경에는 와장창, 하고 한동안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휴, 음, 후후, 그럼 안고도 데리고 갈게.” 다자이가 숨차게 한 예고를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방금 전화는 뭐였지. 식어가는 토스트를 베어 물면서 좀전의 통화를 곱씹어 생각해봐도 혼란하기만 했다. 마피아 간부쯤 되는 인물이면 이런 것마저 잘하는 모양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정말 묘한 대화였다. 그는 상념을 떨치려고 핸드폰을 닫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방금 부엌 창에 비춰 본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웃고 있었는지가 떠올랐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만든 카레는 결국 양 조절에 실패해서 100그릇은 족히 넘을 만큼 많았다.
3. 🌆
고층 빌딩에서 위쪽에 위치한 간부 집무실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아찔했다. 마피아 소유 건물임을 고려하면 돈 주고도 못 살 경치였지만 다자이는 그런 것에 감흥이 없었다. 다만 나카하라는 조금 다른 감상을 품었다. 석양빛을 받아 붉게 물든 구름과 도시의 전체적인 모습을 한 폭의 그림처럼 내려다보면 어딘가 붕 뜬 기분이 들었다. 이 시기의 나카하라 츄야는 아직 그런 설렘을 숨기지도 않고 창가에 서서 한참을 감상했다.
“그런 걸 보는 게 재미있어? 촌스럽긴.”
그가 시선을 창가에 고정한 이유가 꼭 경치만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붕대 자식의 손을 부러뜨렸고, 그 결과 회복될 때까지 그의 서류 업무를 도우라는 보스의 명령이 있었다. 이럴 때 하필 일이 잔뜩 몰려오는 건 무슨 운명의 가혹함인지, 온종일 같은 방에 둘이 있게 되니 화가 치솟았다.
“닥치고 일이나 빨리해.”
전부터 죽은 물고기 눈깔을 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옆에 앉은 다자이는 평소보다 아무 흥미가 없는 얼굴로 서류를 해작해작 들추고만 있었다. 들여다봐도 복잡한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붕대 자식이 금방 끝낼 일을 미적거리고 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사실상 다 끝났는데 깔짝깔짝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따금 그가 핸드폰을 열어 들여다보면 잿빛이던 얼굴이 갑자기 화색이 도는 것도 신경에 거슬렸다.
“아, 화장실 가고 싶어졌다. 집무실 잘 지켜, 츄야”
다자이는 강아지에게 인사하듯 끝까지 약을 올리면서 화장실로 빨려 들어갔다. 시커먼 놈이 눈앞에서 사라지니까 속이 다 시원하군, 하고 책상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가만히 놓여있는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궁금증이 일어나 책상 가까이 다가가자,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가 와서 벨이 울렸다. 그 순간 나카하라는 마침 열어 볼 구실이 생긴듯해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얼른 집어 들어 발신자를 확인하니 화면에는 [❤] 하나만이 쓰여 있었다. 평생 법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에게도 상식은 있었고, 결코 남의 전화를 받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다만 그런 것을 보니 그만 강렬한 호기심이 돋아 자제하지 못하고 수신 버튼을 눌러버렸다.
“다자이, 방금은….”
그리고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신이 번쩍 들어서 얼른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방금 그건 그가 기대한 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 자식은 무슨 부하를 하트로 저장해놔? 장기짝으로만 여기는 주제에….”
잠시 생각한 뒤 그건 부하를 무슨 트럼프 카드처럼 기호로 분류해둔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때 나카하라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상대방이 간부를 반말로 불렀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화장실 쪽에서 세면대에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조급해져서 내려놓으려다가도, 어차피 핸드폰의 위치와 각도가 조금만 바뀌어도 알아챌 귀신 같은 놈이니까 이제 와서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 배경화면은 어디선가 본 듯 조금 익숙한 얼굴에, 후줄근한 행색의 남자가 테이블에 엎드려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진이었다. 배경이 핸드폰의 미감을 죽이는듯한 이 허접한 사진은 도무지 어디서 다운받은 것 같지는 않다. 실수로 찍은 사진을 배경으로 선정하다니, 그놈다운 기행이었지만 다시 자세히 보면 도촬 같기도 한 묘한 느낌의 사진이었다. 배경으로 두기엔 다소 엉뚱한 느낌의 사진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무언가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고 집중한 사이 다자이가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돌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맞춰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닫았다.
“아! 뭐야? 내가 지키라고 했지 훔치랬어?!”
“아앙? 훔치긴 뭘 훔쳐. 전화벨이 울려서 끈 것뿐이거든?”
“내놔!”
다급하게 핸드폰을 되찾으려는 손길과 반사적으로 빠르게 몸을 빼는 동작이 두세 번 엇갈렸다. 다자이는 평소처럼 대충 감아둔 붕대가 아닌 진짜 깁스를 오른팔에 대고 있었다. 따라서 자유로운 왼팔만이 제대로 휘적거렸다. 그건 부러뜨린 사람으로 하여금 불쌍함을 느끼게 하는 광경이었고, 그래서 그는 핸드폰을 순순히 돌려줬다.
“배경 사진은 뭐야?”
“무슨…. 뭘 본 거야? 츄야, 기억 지워! 나만 볼 거라고!”
급히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는지 어쩌는지 화면을 들여다보는 데 열중하다가 갑자기 바락 소리를 지른다. 나카하라가 느끼기에 평소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갈피를 잡기 힘든 깊고 시커먼 구멍 같은 녀석이 이럴 때는 꼭 어린애 같았다. 그러면서도 다자이의 시선은 어떤 이로부터 온 오타투성이의 문자메시지가 띄워진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못 본 걸로 하고 싶거든? 이상한 놈….”
“아아, 오늘은 기분이 나빠져서 일 그만할래.”
“뭐?”
“어차피 진작 다 끝났다는 것 정도는 초등학생이라도 알겠지?”
다자이는 성큼성큼 문으로 걸어가더니 그대로 유령처럼 아무 소리도 없이 문을 밀고 나가버렸다. 왼손으로 익숙한 듯 문자질을 하면서, 인사는커녕 끝까지 뒤돌아보지도 않는 뒷모습만이 잔상으로 남았다. 방 안에는 저녁노을과 얼빠진 나카하라만이 남아 고요했다.
“뭐냐…?”
4. 🎂
포트 마피아 빌딩의 꼭대기 층에는 넓고 호화로운 방이 있었다. 그곳은 선대 보스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사용했고, 지금은 그를 돌보던 의사가 사용하고 있었다. 그 의사는 방만 빼앗은 건 아니었기에 지금은 보스가 된 남자, 모리 오가이는 방에 마련된 보스 전용의 편안한 의자에 몸을 푹 파묻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편안한 자세와는 다르게 심기가 불편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을 했다.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그가 앉은 의자 앞쪽의 책상에는 그의 반쪽이나 다름없는 소녀가 프릴과 레이스가 듬뿍 장식된 하얀 원피스를 입고 앉아서 다리를 달랑거리고 있었다. 소녀는 원피스가 아무렇게나 구겨져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듯 자세를 바꾸지도, 치맛자락을 펼쳐서 고치지도 않았다. 게다가 책상에 놓인 홀케이크를 한 손에 쥔 포크로 이리저리 뭉그러뜨리고 있었다.
“린타로는 잔걱정이 너무 많아!”
케이크 위의 체리가 사정없는 포크의 공격을 받아 형태를 잃어가고 있다. 그런 참사가 일어나는 책상의 반대편에는 한 장의 종이가 올라와 있었다. 통화요금 고지서였다. 모리는 종이를 들어 팔랑거리다 거기 적힌 숫자를 더듬어보면서 빙긋 웃었다.
“그건 그렇고 굉장한 금액인걸. 요금 폭탄이야~”
“분명 다자이는, 남의 정보를 함부로 본다고, 막 화낼 거야~?”
소녀는 포크 끝에 맺힌 체리와 크림을 천천히 맛보면서 흥얼거리듯 말했다. 모리는 잠시 흥미로운 상상을 하는 듯 갸웃거린다. 다자이가 봤다면 작위적인 연출이라고 은근히 경멸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을 광경이었다.
“흠~상관은 없는데, 내 전화는 용건만 말하고 끊으면서?”
“사춘기 남자애란 그런 법이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소녀는 책상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작은 손에 든 포크는 만신창이가 된 체리를 꿰었다. 붉은 즙이 하얀 원피스에 점점이 떨어져 묻었다.
“그런가…. 쓸쓸하네~ 이젠 정말 앨리스뿐이야~”
“맨날 말만 그렇잖아. 그보다, 린타로는 욕심이 너무 많아!”
5. ⛅
거리에 오가는 사람이 드문 이른 새벽이었다. 간혹 폐지를 줍는 수거업자만이 어슴푸레 모습을 보였다. 싸늘한 새벽바람이 그런 길거리에 들어선 다자이의 옷깃을 파고들었다. 이런 시간에 일이 끝나다니…. 어제 잡아온 포로가 상당히 제어하기 곤란한 면이 많은 것이 큰 변수였다. 결국 밤을 꼬박 새운 후에야 작업이 끝나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기에 추위조차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는 잠시 밤공기를 들이쉬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단축키 1번을 눌렀다.
전화를 귀에 댄 채로 아무렇게나 발걸음이 닫는 곳으로 걸어간다. 1초 재생 2초 정지, 반복해서 귓가에 울리는 연결음이 7번째에 닿을 때 전화는 툭 끊어졌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 소리 후에……. 어라, 평소의 모리씨라면 금방 받을 텐데. 의문을 가지고 핸드폰을 보면 화면의 발신 전화 목록 위에는 다른 이름이 적혀있었다.
“아,”
단축번호를 다른 사람으로 바꾼 것을 잊었다. 잊었다는 말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랬다. 그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자이는 자신이 정말 헷갈린 건지 자기의 욕심이 일부러 실수하도록 그를 이끈 건지를 명확히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우두커니 선 채 거리의 가로등이 꺼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면서 방금 전화를 거절한 그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떠올렸다. 침대에서 쉬며 아침이 올 때까지 자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도 자신처럼 이 도시의 어느 곳에서 또 성가신 일을 해내고 있었나? 방금 전화가 그에게 방해가 된 것은 아닐까? 자꾸 이런저런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건 그에게 다소 생소한 체험이었다. 그러나 머릿속에 낯선 궤적을 그리는 것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유 모를 기쁨이 진득하게 밀려와서 가슴을 메웠다. 또 동시에 그런 기쁨에 의문을 느꼈다. 떠오르는 아침해를 감지하고 올려다본 하늘에는 엷은 구름이 비늘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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