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어느 가을날 늦은 저녁이었다. 인적이 드물어진 도시 외곽의 공원에는 단 한 사람만이 남았다. 가로등과 거리를 두고 한층 어두운 벤치에 누워있는 이는, 포트 마피아의 최연소 간부였다.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소년은 매우 얌전하게, 가지런히 누워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공원에 오더라도 의자의 일부라고 여기고 지나칠법했다. 반면에 그의 내면에는 온통 극도의 불쾌감과 메스꺼움이 아무렇게나 뒤엉키고 있었다. 그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조금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부러 후미진 자리를 찾았다. 적이든 아군이든 일반인이든, 이런 때에 사람들을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이 공원에 지금 인적이 적은 것도 그가 기여한 바 적지 않았다. 여름도 다 지나 선선해진 늦저녁에, 한적한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요즈음 그런 식으로 돌아다니다가는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벌어지는 패싸움에 휘말려 죽기를 자청하는 꼴이다. 운이 나쁘면 담배 피우러 나간 사람이 흔적이나 뼛조각조차도 남김없이 사라지는 무서운 시기였다. 그리고 그 험악한 분위기를 만든 결정적인 인물은, 여기 누워있는 창백한 인상의 소년이었다. 파란 핏줄이 비치는 여윈 손목으로는 사람은커녕 귀뚜라미 한 마리도 잡기 어려워 보이는 모습이다. 평소와는 다르게 손목에 그가 늘 감고 다니던 붕대는 어디론가 가고 없다. 얼굴을 비스듬히 가린 붕대도 어제보다 허술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른 저녁에 공원에 도착해서 어두운 벤치를 찾아간 이유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까부터 그를 괴롭히는, 속이 메스꺼워질 정도의 불쾌감은 손가락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손톱이다. 손톱에서 미뢰라도 생겨난 것처럼 비린내가 느껴졌다. 정신없이 아무렇게나 걸어서 결국 인적이 드문 이곳으로 오는 중에도, 나무가 보이면 아무 데나 긁고 싶어져서 미칠 노릇이었다. 공원의 어둠 속에서 벤치를 온통 다 긁어놓고 나서야 조금 역겨움이 가시고 진정이 되는 듯했다. 그렇게 불쾌감을 마구잡이로 진정시키고 나니 왠지 정신은 오히려 흐리멍덩해졌다. 가만히 누워있자니 유난히 요란하고 성가시게 처리되던 일들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공원은 아주 조용하고 공원을 둘러싼 도시 또한 아무런 말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옆에 앉은 귀뚜라미 소리가 문득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여러 마리가 꽤 시끄러운데도 언제부터 들리고 있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올 때부터 있었던가? 조금 전부터 울기 시작했나?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귀뚜라미 소리는 뚝 그쳤다. 소리가 그치니 이제 어디서 들려왔었는지도 깜깜히 모르게 되었다. 조용해진 귀뚜라미들은 손바닥과 손등으로 기어올라오는 것 같았다. 좀 전에 긁어낸 불쾌감이 더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서 돌아온 듯 소름이 끼쳤다. 어쩐지 그 역겨운 덩어리가 손톱 끝으로 끈적하게 달라붙어 올라오는 것만 같다. 어서 털어내려고 재빨리 손을 움직이자 벤치 위에서 뭔가 차가운 것이 잡혔다. 이상야릇하게 시원하고 산뜻한 느낌이 들어 잡아채서 손끝으로 더듬어보니 그것은 크고 단단한 쇠못이었다. 평소라면 굳이 만지지도 않을 물건인데, 지금은 쇠못 표면의 우둘투둘한 느낌마저 즐겁게 느껴졌다. 때맞춰 나타나 준 정화의 수단이 손끝의 오염을 다 떼어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반가운 기분이 들었지만 동시에 손톱은 점점 참을 수 없이 굼실굼실 간지러워졌다. 다자이는 아무래도 손톱에 벌레가 들어간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한참 시간이 지났다. 정화에 열중하고 있었던 게 한 시간이었는지, 반 시간이었는지, 혹은 몇분도 안 되는 잠시였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손은 이제 적당히 산뜻하고 불쾌감은 거의 다 가라앉았다. 초저녁에는 느껴지지도 않았던 선선한 가을바람이 선명하고 생생하게 스치고 가슴까지 시원해졌다. 흐릿한 가로등 빛이 창백한 얼굴에 띤 미소를 비췄다. 흡족한 기분에 약간 졸음이 온다. 멀리 공원 옆 연립주택 건물에서 아득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절 그에게도 찾아갈 친구가 있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그를 곤란한 기색도 없이 맞이해주는 소중한 친구였다.

 오다사쿠를 보러 갈까? 잠시 생각했을 뿐인데 발이 저절로 움직인 것인지 정신을 차리니 대문 앞이었다. 기껏 대문 앞까지 와놓고서 돌아가기도 싱거운 일이지만 막상 초인종을 누르려니 서슴서슴 망설여졌다. 문이 열리면, 그냥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해야 할까? 술집에서야 우연히 마주친 척을 하곤 하지만… 너무 자주 오는 건 아닐지, 정확히는 오다가 혹시라도 그를 성가시게 느낄까 봐서 걱정이 되었다. 만약 그렇다면 말단인 그가 혹시 내키지 않아도 거절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를 억지로 참게 만든다고 생각하면 스스로가 구질구질하고 싫증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 한편에선 친구가 그럴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어도, 이런 불안한 생각은 종잡을 수가 없다. 한동안 머뭇머뭇했지만 역시 집에 돌아갈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초인종을 누르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면서 안쪽에서 잔뜩 긴장한 표정의 오다가 불쑥 나왔다. 권총을 쥔 손에 핏줄이 선명히 돋아 있었다.

 오다는 현관문 앞에 선 친구를 보자 긴장의 끈을 놓은 듯 얼굴이 다소 느슨히 풀어졌다. 그는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인물에게서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확인차 대문을 열어본 것이었다. 그의 이능력인 천의무봉은 문 너머의 상대가 손님인지, 적인지, 아니면 방문판매업자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만약 그게 가능한 만능이었어도 지금 눈앞의 친구에게는 통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안심한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미소는 굳어버린다.

“다자이. 그 손…”

 손이 피투성이에다가 슬쩍 보기에도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놀란 마음에 대뜸 물어보려다가 대답하고 싶지 않은 걸 캐묻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잠시 머뭇거렸다. 자신이 물어본다면 그는 내키지 않아도 대답해줄 것이다. 주변 조직원의 소문에 따르면 다자이는 평소 감히 말도 섞기 힘든, 혹시나 그에게 성가심을 더할까 봐 눈도 마주치기 두렵다는 간부다. 그가 자신을 친구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 괜히 더 애쓸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일은 작은 어깨 위에 올리기에 지나치게 많을 것이다.

“아. 손……. 손톱에 말이지, 벌레가 좀 들어가서. 혹시나 기생충이 되면 큰일이잖아? 꺼내느라 애를 좀 먹었는데. 지금은 괜찮아.”

 다자이는 엉망이 된 손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면서도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여상스럽게 재잘대더니 조금 겸언쩍은 듯 웃었다. 그렇군, 하고 대답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포근하고 부드럽게 웃는 표정과는 다르게 다자이의 뺨에는 별로 생기가 돌지 않았다. 그러면서 오다를 따라 들어오지는 않고 현관 앞에서 멀뚱히 서 있었다. 마치 그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듯, 가만히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그의 집에 온 게 처음이 아닌데도 꼭 그랬다.

“다자이. 추우니까 어서 들어와서 앉아라. 변변찮은 집이지만…”

 응, 하고 밝아지는 얼굴을 보면 묘하고 이상한 만족감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다가 이런 기분을 느끼도록 그가 의도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마저도 혼자 몹시 흐뭇한 느낌이 들어서 내심 화들짝 놀라곤 했다. 이런 상념을 떨쳐 버리려고 다급하게 욕실로 들어가서 작은 대야에 물을 채웠다. 거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미지근한 물을 들고 거실로 나가니 다자이는 낡은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고 졸린 듯 곱게 눈을 감고 있었다. 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왠지 알았다. 워낙 간소한 세간살이에 휑한 집이라 구급상자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다자이?”

 대답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들어 올려서 대야에 넣고 흔들었다. 피가 씻겨나가니 아직 조금 가냘픈 구석이 있는 하얀 손이 눈에 들어왔다. 손톱은 이리 닳고 저리 들리고 마구 부러지고 꺾여서 모두 제멋대로였다. 손끝마다 살갗이 쓸려서 붉었다. 아파 보이는 양손을 씻어주며 곁눈질로 다자이의 얼굴을 확인했지만 긴 속눈썹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잠든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평온해 보여서 깜박 속을 것 같았다. 아픈 건 질색하는 여느 때의 그답지 않은 모습이다.

“차라리 잠드는 게 나을 텐데. 아파도 조금 참고 가만히 있어 줘.”

 내가 자는 척을 들키다니, 이걸 알아채는 건 오다사쿠 정도뿐일 거라 생각하며 다자이는 한쪽 눈꺼풀을 슬쩍 들어 올렸다. 작은 거실의 안락의자에 앉아서 잠시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약간 남아있던 초조함도 모두 사라졌다. 문 앞에서 한 걱정이 까마득한 옛날 일로 느껴졌다. 그리고 벌레 같은 건 없었다는 사실도 기억해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지금은 이 무의미한 자는 척을 계속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와 함께 있을 때면 문득 유치한 장난을 하고 싶어지고, 거기서는 이유 모를 기쁨이 샘솟았다.

 오다는 구급상자에서 가위와 집게를 꺼냈다. 손톱이 들리는 건 그도 일찍이 경험했던 일이었다. 대략적인 치료 방법은 알고 있었다. 최대한 신중한 동작으로 조각난 손톱을 제거하려고 하니 자꾸만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자신이 섬세한 작업에 별로 소질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몇 번을 실수해서 손이 미끄러졌는데도 다자이는 아파하는 기색이 없었다. 빤하게 들킨 자는 척을 계속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정말 피곤하기도 하겠지만… 가만히 보고 있자니 역시 자는 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조금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갈라진 손톱을 떼어 내서 피가 나는 손끝을 거즈로 감싸 꾹 잡아주었다. 단단히 잡고 있자니, 오다는 자신의 손안에 든 두 손이 가치를 매기기도 어려운 포트 마피아 간부의 손이라고 새삼 떠올렸다. 귀하기로는 도시 내에서 겨룰 상대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 자신 같은 말단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네 손은 귀중하니까 조심히 다뤘으면 좋겠군…….”

 다자이가 눈을 번쩍 떴다. 잠시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내려다봤지만, 오다는 고개를 숙이고 거즈를 조심스럽게 떼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구급상자에서 연고를 꺼내서 손끝의 상처에 발라줄 때까지, 다자이는 자기가 눈을 떴다는 사실조차 잊은 것 같았다. 연고를 듬뿍 발라 번들거리는 손가락마다 하나씩 밴드를 감다, 문득 올려다보면 넋이 나간 다자이가 보였다. 오다는 아무래도 그의 친구가 아프고 피곤해서 정신이 혼곤해진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어서 쉬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치료를 끝냈다. 다자이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더니 돌연 정신이 돌아왔는지 큼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오다사쿠……. 고마워.”

 그가 다자이에게 궁금한 것은 많았다. 다자이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손톱을 망가뜨린 건지 남에게 당한 것인지, 또는 그럴만한 이유가 정말 뭐가 있었던 것인지 등등. 하지만 주제넘은 질문을 해서 간부가 아닌 친구로서 대답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어쩐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물을 수 없다면 그저 믿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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