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되어도 사랑은 할 수 있어! 그것은 절망인가, 희망인가?
※한 번 죽은 이 목숨 무슨 인과 때문인지 되살아나 쏘고 맞는 게 숙명이라면 연인을 향한 마음 가슴에 담아 관철해 나갈 뿐-!
※아주 가벼운 좀비물입니다. ㅇ밀크 ㅂ포네.
1.
비 내리는 적적한 묘지에 카포네의 발소리가 메아리쳤다. 밀크의 장례식은 예상보다 짧고 또 시시했다. 희끗희끗한 하늘 아래에 검은 정장 차림의 조직원들이 줄지어 서 있고, 흙 비린내와 위스키 향이 뒤섞였다. 카포네는 부하들을 모두 내보내고 묘지 한 쪽에 홀로 남아 있었다. 그는 혼자 술잔을 들어 올리며 애타는 듯이 묘비만을 바라보았다.
"밀크... 네가 돌아온다면, 다시는 혼자 두지 않겠어."
그 순간 바람이 살랑살랑 일어나더니 땅속에서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카포네는 관을 노려보다가 그만 그 위에 떨어진 흙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뚜껑이 빼꼼 열린 관 속에서는 창백한 얼굴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대부님, 잘 잤어요?"
장례식 끝물에, 관에서 비죽 튀어나와 하품을 한 밀크가 눈을 번쩍 떴다.
"뭐?!"
"어라, 나 왜 여기 있지...?"
구덩이 속에서 졸린다는 듯 눈가를 비비는 밀크의 얼굴에는 혈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밀크는 차가운 숨을 뱉으면서 물어보지만 카포네는 여전히 이 상황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밀크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명백한 사실만이 마음속에 남으니, 카포네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좋은 아침이야, 밀크...."
2.
다음 날부터 아침마다 둘만의 비밀 의식이 치러졌다.
카포네는 매일 침대 옆 화장대 앞에 밀크를 앉혀두곤 했다. 거울 안팎엔 각종 메이크업 도구들이 늘어섰다. 그의 손놀림은 정말이지 누구든 알면 깜짝 놀랄 정도로 능숙했다. 오랫동안 자기 눈에 칠을 한 손끝이, 이제는 밀크의 창백한 피부에 세심하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붓으로 속눈썹 사이로 가볍게 색을 얹어줬다. 그리고 두 볼에는 살굿빛 스프레이를 뿌렸다. 마지막으로 입술에 희미한 혈색을 칠해 주면 밀크는 다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밀크, 움직이지 마. 눈을 감아, 그래 그렇지."
문틈 사이로 엿보려던 부하들은 눈치 빠른 대부의 싸늘한 눈짓에 헛기침을 하고 돌아섰다. 아침마다 죽은 연인의 얼굴에 분칠을 해주는 보스라니, 이런 기묘한 일을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닌들 미친놈 취급 당할게 뻔했다. 그래서인지 밀크 화이트가 이미 한번 죽은 좀비라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밝혀지지 않았다. 카포네의 오른팔이 가짜 장례식을 한 것은 신분 세탁, 돈세탁을 위해서라는 굉장히 논리적인 소문만이 뒷골목을 뱅글뱅글 돌 뿐이었다. 혹은 더 창의적인 이들은 1대 밀크는 죽었고, 닮은 놈을 2대 밀크로 들여온 것이라는 헛소문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현실은 그것들보다 더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3.
벅스 모란 그리고 타 조직 등과의 사이는 좋아질 길이 없었고 결국 전투는 다시 일상이 되었다. 밀크는 모든 일에 앞장섰다. 총탄이 마구마구 빗발칠 때마다 소년은 늘 카포네 앞으로 몸을 날렸다. 탄환은 퍽 하고 살을 관통하는 흉터를 남겼지만 밀크는 곧 다시 일어나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었다. 부하들은 이런 미쳐 돌아가는 장면에 경악했으나 카포네는 오히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밀크, "
또 다시 총성이 터졌다. 한 발, 두 발, 그러나 카포네 앞에 선 밀크는 반동에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지는 않았다. 곧이어 조직원들이 대응 사격에 들어갔다. 밀크는 총알이 어깨를 꿰뚫고, 팔에 깊게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씨익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대부님. 저 이제 안 죽으니까."
카포네는 그 웃음이 어쩐지 견디기 힘들었다. 밀크의 총알 자국을 자세히 보니 피도, 멍도 없이 텅 빈 구멍만이 있었다. 카포네의 눈빛은 더 어두워졌다. 밀크는 오히려 좋다고, 이대로 집에 가서 대부님이 꿰매주면 된다며 환하게 웃었지만 카포네의 심장은 부르르 떨려 왔다. 언제까지고 밀크를 방패로 쓸 수는 없다. 이 소년은 죽어서까지 자신 때문에 험악한 일에 휘말리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4.
밀크가 불사라는 건 어쩌면 허상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밀크의 몸은 미세하지만 분명히 변하기 시작했다. 피부는 더 얇아졌고 관절은 힘을 잃었다. 어느 날 밤에, 전장에서 돌아온 둘이 소파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 있던 중이었다. 밀크가 소파 테이블의 잔을 집으려 손을 들어 팔을 쭉 펴자 오른팔 하나가 툭 하고 떨어져 바닥에 굴렀다. 둘 다 동시에 얼어붙었다. 카포네는 재빨리 떨어진 오른팔을 집어 들고 붙여 보려 했다. 그러나 살은 더 이상 말랑하게 붙지 않았다. 접합 부위는 죽은 동물의 가죽처럼 매끈했다.
"아...! 이런 건... 처음이에요."
밀크는 당황해서 어색하게 배시시 웃었다. 그 웃음 뒤로는 현기증의 전조가 흘렀다.
"밀크, 보통 이런 일은 인생에 두 번씩이나 없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였다. 냉장고. 카포네의 냉장고는 지금까지 수많은 포도주와 야채와 고기를 차갑게 지켜온 것이다. 그것들을 쓸어내고서 냉장고는 이제는 다른 용도를 갖게 되었다. 그는 밀크를 조심스레 감싸 안아 큰 상자 속에 눕혔다. 상자의 라벨에는 아무런 글씨도 없었고 안쪽은 차가웠다. 카포네는 냉장고 문을 닫고 손을 떼며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 언제든 꺼내면 된다, 고 자기 세뇌를 했다. 그 거짓말이 무너지려는 생활을 허방다리 위를 건너듯 간신히 뒷받침했다. 밤이 되면 그는 홀로 소파에 앉아 위스키를 마셨다. 그리움이 치밀 때면 그는 냉장고 문을 열고는 밀크를 꺼내어 다시 얼굴에 화장을 해주거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즉 어느 여름밤, 카포네는 술잔을 기울였다. 홀로 앉아 있던 그는 결국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앞에 선다.
"밀크…"
덜컥, 문을 여는 순간에 싸늘한 공기 속에서 창백한 팔이 불쑥 튀어나왔다. 늘 그렇듯 눈을 비비며 여유롭게 깨어난 밀크가 하품을 한다.
"잘 잤어요, 대부님?"
카포네는 안심한 듯 혹은 무너지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팔을 뻗어 밀크를 냉장고에서 꺼내 안았다. 그 품은 차갑고 딱딱하며 냉장고 냄새로 가득했지만 카포네는 그것조차 미어지게 사랑했다.
5.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좀비가 된 밀크는 더욱 허약해졌다. 밀크는 점점 더 빈번히 오래 잠들어 쉬어야 했고, 깨웠다가 다시 냉장고에 넣을 때 눈빛은 예전보다 덜 평온했다. 어느 새벽에 카포네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슬슬 한계를 느낀 밀크는 천천히 눈을 떠 냉장고 문을 밀었다. 차디찬 공기가 따뜻한 실내에 흘러나왔다. 그 이질성의 감각이 밀크의 이미 뛰지 않는 심장을 아프게 했다. 결국 죽은 자는 산 자의 곁에 남아서 좋을 것이 없는 법이다. 그는 딱딱해진 손을 간신히 펴 냉장고 문을 닫고서, 조심스럽게 탁자 위의 메모지 한 장을 꺼냈다. 혼신을 다해 마지막으로 쓴 글씨는 조금 삐뚤지만 또렷했다. 좀비가 된 소년은 그 편지를 남겨두고 집을 떠났다. 길은 어두웠고 도시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카포네는 아침에 눈을 뜨자 텅 빈 채로 열어둔 냉장고 문 그리고 탁자 위의 편지를 발견했다. 메모지를 집어 드는 손이 불안으로 벌벌 떨려왔다. 편지 속 문장은 짧았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 대부님, 살아있는 사람 곁에 있으세요. 저는 이제 가볼게요. ]
어디로 간다는 거지. 아직도 길을 헷갈리는 너는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와도 같다. 죽어서도 나를 애먹이는 거냐. 그런 생각을 하며 달려 나간 카포네는 밀크의 흔적이 남을 만한 곳을 닥치는 대로 다 뒤지고 다녔다. 그러나! 어디에도 밀크 화이트는 없었다.
며칠 동안 카포네는 잠을 자지 않았다. 밤이 되면 카포네는 습관처럼 냉장고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면 언제나처럼 밀크가 하품하며 여상스럽게 깨어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냉장고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혹시나 하고 열면 어김없이 차가운 바람만이 흘러나와 방안을 채웠다. 그는 냉장고 문을 오래도록 붙잡고 서 있었다. 손끝이 얼어붙을 만큼, 냉장고에 밴 밀크의 냄새를 느끼려고 그러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결국 냉장고 문에서 손을 떼자, 문이 무겁게 닫히는 소리가 심장을 툭 질러왔다.
6.
시간은 잔인하고도 착실히 흘렀다. 갱단 사이의 전쟁은 지겹게도 이어졌다. 도시의 밤은 늘 잔혹했다. 하지만 카포네의 이름은 더 이상 공포를 먹고 자라나지 않았다. 그를 따라다니던 흉흉한 소문들 뒤에는 이제 이상한 의문이 따라왔다.
"알 카포네가 미쳤대. 밤마다 빈 냉장고 앞에서 혼잣말을 한다더라."
"밀크라는 놈을 찾으러 다닌다며. 야, 그놈 이미 예전에 죽은 놈 아니었어?"
사람들은 수군대고 부하들은 한 움큼 두려움과 한 줌 연민을 동시에 느꼈다. 카포네는 그따위 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한번 달콤함을 맛본 뒤 빼앗긴 듯, 밀크 없는 일상은 그에게 끔찍한 지옥을 선사했다. 절박하게도 그는 단지 도시 어디쯤에서 밀크 화이트라는 소년이 여전히 길을 헤매고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는 기다리면 밀크가 돌아올 거라고 믿어야만 했다. 그 믿음이 그를 구원해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했다. 밀크는 정말 어디로 갔을까?
갱 전쟁은 이어졌고, 이제 시카고 사람들은 진력이 나다 못해 덤덤히 무뎌졌다. 그러나 카포네만은 다른 지옥 속에서 살고 있었다. 밤마다 그는 익숙한 냉장고 앞에 앉았다. 텅 비어 있는 상자, 차갑고 고요한 공간감의 전개가 심장을 찔러온다. 냉장고의 문을 열면 언제나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카포네는 꿋꿋이 믿었다. 언젠가 아주 언젠가는 여기서 밀크가 하품하며 눈을 비비고 나올 것이라고. 그는 잔을 들며 혼잣말했다.
"잘 잤어? 밀크."
빈 냉장고 앞에서, 그 한마디만은 절대로 빠뜨리지 않고 매일 중얼거렸다. 부하들은 그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고 두려움과 연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들의 두목은 전설적이고 잔인한 대부면서도,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고 허공에 말을 거는 미치광이처럼도 보였다.
7.
어느 비 내리던 밤, 적 조직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또 총탄은 쏟아졌고, 골목은 금세 연기와 피로 뒤덮였다. 카포네는 늘 그래왔듯 선두에 서서 전투를 지휘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면 그의 눈앞에는 적도 부하도 없었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이 있었다.
"밀크…."
소년은 그곳에 확실히 있었다. 한 번쯤 죽어서 창백한 얼굴 위에 화장을 곱게 얹은 채, 늘 그렇듯 씨익 웃으며 카포네를 가리고 당당히 서 있는 소년이다. 총알이 빗발쳐도 쓰러지지 않던 당찬 그 모습 그대로였다. 카포네는 무의식적으로 미소 지었다. 마음속의 타는듯한 갈증이 단숨에 사르르 씻겨나가듯 풀리는 것만 같았다. 아, 이제 괜찮아. 다시 만났으니까.
"밀크, 기다렸잖아."
퍽, 하고 탄환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또 한 발이 매섭게도 날아들어 명중했다. 부하들이 각자 고함과 비명을 질렀으나 카포네는 오히려 어느 때보다도 평온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의 소년은 아직도 거기에 서 있었다. 다른 누구에게는 보이지 않는 오직 그만의 환영이었다. 밀크 화이트는 여전히 씩씩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스르륵 무너져가는 몸을 겨우 붙잡고서 카포네는 속삭였다.
"이제야... 만날 수 있나."
총성은 귀에서 아득하게 점점 멀어지고 그의 세상은 검게 침잠했다. 마지막 순간 그의 눈앞에 남은 잔상은 체온이 차갑게 식었어도 누구보다 따스한 한 소년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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