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둥이 설정 ㅇ밀크, ㅇ밀키, ㅂ포네.
※ 본공 한참 후 시점, 캐릭터 변화 있음 (약 10년 후)
1.
한낮인데도 온종일 구름이 잔뜩 끼어 어두운 날이었다. 쌍둥이 형제인 밀크와 밀키가 출근할 때 까지만 해도 그저 흐릿할 뿐이었는데 퇴근 시간이 되니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카포네가 경찰에 붙잡혀 조직이 와해된 지 몇 년 후인 지금, 두 사람은 건어물을 가공하는 식품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둘 다 우산이 없어서 근무복 외투를 뒤집어쓰고서 발맞춰 함께 집까지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잔뜩 젖은 생쥐 꼴을 하고 그들의 오래된 아파트로 돌아왔다.
문을 닫고 들어서자 잠시간 아늑한 고요가 두사람을 감싼다. 전등을 켜지 않아 어두컴컴한 거실에는 낡은 소파 위로 카포네가 기대어 앉아 있다. 현관에서 대충 물을 털어낸 밀크 형제는 소파로 다가가서 각자 양쪽 소파 팔걸이에 기댄다. 비슷한 얼굴, 같은 듯 다른 표정, 비슷한 버릇을 가진 두 사람이 동시에 카포네를 내려다본다.
"잘 있었어요?"
"잘 있었네요?"
카포네는 아직 약간 혼란스러운 듯 말 없이 쌍둥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교도소 출소의 이유가 된 정신적 결함으로 인해, 밀크가 한명이 아니라 쌍둥이인 것을 알게 된 그 시점까지 정신이 퇴행했기 때문이다. 정신적 결함 때문이기도 하고, 원래 그의 인생이 그래 왔듯이, 카포네에게 현실은 말이 되는 게 하나도 없고 뒤죽박죽이다.
"먼저 씻어, 내가 너 다음에 씻을게."
오른쪽 팔걸이의 밀크가 말했다. 왼쪽 팔걸이에 기댄 밀키는 그 말을 듣고 살짝 웃으며 몸을 일으킨다. 그러면서 소파 옆의 장 스탠드에 불을 탁 켠다.
"둘만 놔둔다고 수작 부리지 마."
"뭔 수작, 어제는 너랑 있었잖아. 내가 아저씨 독차지하면 너는 어떤데?"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지, 그렇게 안 놔둬."
"나도 동감이거든, 빨리 씻으러나 가."
밀키는 욕실 가는 모퉁이에 놓인 바구니에서 수건을 꺼내서 샤워실로 들어갔다. 밀크는 얌전히 소파에 앉아 있는 카포네의 속눈썹을 내려다본다. 아저씨가 넋이 나가 버린 건 출소 이후부터 쭉 이랬다. 재소 중에 충격적인 일이 많아서 이렇게 된 건지 원래 있던 병 때문인지는 불분명했다. 밀크는 카포네 아저씨의 동글동글한 머리통을 쓱쓱 쓰다듬다가, 그러고는 귓불을 만지작 대다가, 그러고는 섬세한 속눈썹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쓸어 본다. 그러는 동안 카포네는 미동도 없다가, 밀크가 그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키자 움찔, 하고 움직인다. 카포네는 약간 곤란한 듯 웃는 표정을 밀크에게 보여준다. 출소 후에는 카포네는 어지간하면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밀크는 그럴 때 카포네가 마치 목소리를 빼앗긴 인어 공주 같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지금 같은 때 스킨쉽의 곤란함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없는 무능이 그렇다. 밀크는 아저씨의 안절부절못한 얼굴을 감상하다가 짧게 입맞춤했다.
"오늘 일도 진짜 힘들었는데, 이 정도는 격려해줄 수 있는 거잖아요."
불안한 듯 보이는 카포네는 욕실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뜻은 뻔하다. '밀키 한테 들키면 어쩌려구 이래.'
"밀키가 왜요?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아저씨는 누가 더 좋은데요?"
"......"
카포네는 못 말리겠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밀크는 그런 카포네를 보고 더 참을 수 없어져서 재차 깊게 입맞춤을 했다. 금방 숨이 막히는지 카포네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숨 쉴 시간을 주려고 밀크가 잠시 떨어졌다. 밀크가 카포네의 코앞에서 속삭였다.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역시 저죠?"
그때, 샤워가운을 걸친 밀키가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
"야, 밀크 너 또 안보니까 수작질 시작했지, 이래서 둘만 놔두면 안된다니까."
밀키가 툴툴대면서 머리의 물기를 털며 다가왔다.
"어제는 어땠는데? 너한테 다 못 넘겨 나는."
"우리 둘 다 양보 못해, 공평하게 나눠 가지기로 했잖아."
"대부님을 반으로 찢자고?"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한 카포네가 중재를 하려고 나섰다. 소파 앞에서 다투는 두 사람의 손을 양손에 잡고서 멋쩍게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서 화해 하라는 뜻이었다.
"끔찍한 소리 말고 씻어. 냄새 난다."
2.
밀크가 씻는 동안 밀키는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크림 수프와 빵, 소시지와 옥수수와 콩, 모조리 팬에 넣고 가열하는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제법 좋은 냄새가 났다. 4인용 식탁의 의자에는 카포네가 앉아서 밀키가 요리하는 모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밀키는 음식을 접시에 담고 각자의 자리에 놓았다. 카포네 옆자리에 앉은 밀키는 숟가락으로 수프, 옥수수와 콩을 떠서 후후 불어 식힌 뒤 카포네에게 먹여 주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카포네는 음식을 먹는 법을 배운 적 없는 아이처럼 물끄러미 수저와 접시를 바라보고만 있다. 대체 감방 생활이 어떻게 굴러간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니까 출소 시킨 건가, 하고 생각한 밀키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맛있어요?"
그 말에 카포네가 빙그레 웃었다. 꽤 기분이 좋은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카포네가 뭐라고 뻐끔 거리면서 말을 하려고 했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않았다.
"아저씨, 맛있으면 뽀뽀해주기로 했죠?"
그런 요구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카포네는 밀키의 이마에, 뺨에 짧게 입맞춤 해 주었다. 밀키는 안달이 나서 볼을 손으로 잡고 카포네의 입술으로 직진해서 깊게 키스했다. 조금 억센 동작에 놀란 카포네가 움찔 한다. 방금 먹인 수프의 달콤한 맛이 밀키와 카포네의 입 속에서 뒤섞였다. 그러는 순간 이번엔 밀크가 욕실에서 튀어나온다.
"얼씨구, 누가 누구더러 수작질이라고 한 건지."
"밀크, 밥이나 먹어."
"네가 아저씨 밥 먹여드리게?"
"내 차례니까."
그런데 이때 카포네가 스스로 숟가락을 잡는다. 밀크는 그 모습을 귀여워하면서 웃었다. 한동안 말없이 식사 중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부엌에 가득했다. 음식을 다 먹은 후 설거짓거리를 정리할 때였다.
"밀크...밀키..."
카포네가 몇 개월 만에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히 또렷한 눈빛으로 둘의 이름을 불렀다. 고양된 긴장감으로 가득 찬 집안의 공기가 폭발할 듯 팽창하는것이 모두에게 느껴졌다.
"...방금 뭐야."
"정신 차리신거 아냐?"
"설마. 의사가 안 낫는다했는데."
"의사가 돌팔이겠지."
"어쨌거나, 우연이야."
대수롭지않게 말하며 밀크는 싱크대로 가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밀키는 다시 담담하게 가라앉은 카포네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거기서 어떤 것이든 예전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그의 눈동자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이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3.
모든 숨겨진 진실은 언젠가 그 모습이 드러난다. 어떤 진실은 평화를 위해 차라리 비밀이 되어 아무도 모르는 쪽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런 진실이 드러날 때 일상은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는 고통과 아픔을 체감시킨다. 세 사람의 일상은 그런 줄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카포네의 약을 바꿔치기 하고 있는 건 밀크일까 밀키일까? 어쩌면 두 사람은 서로의 행동을 못 본 척 해주는 것으로 일상을 지속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두 사람이 아닌 세 사람일지도 모른다.
4.
휴일 저녁, 두 사람은 양옆에서 카포네 아저씨의 손을 잡고 앉아 흑백 텔레비전을 틀어두고 있었다. 쌍둥이가 열심히 일한 돈으로 마련한 텔레비전이었지만, 꾸벅꾸벅 조는 카포네가 그것을 즐기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나머지 두 사람의 목적은 카포네의 곁에서 공평하게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데에 있었으므로 실질적으로 화면에 집중하는 사람은 없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미묘하게 달콤한 피곤함을 느끼면서 세 사람은 소파에 늘어졌다. 한참을 텁텁한 침묵 속에서 있다가 밀키가 말했다.
"아저씨가 정신 차리면 어떡하지."
"그럼 우리는 큰일 나는 거야, 아저씨가 우릴 가만 두겠어?"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해? 언제는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듯이 굴더니."
"확실한 건 지금처럼은 못 지내겠지."
밀크가 카포네의 손에 깍지를 끼고서 들어 올려 손등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그리고선 카포네를 안아 들어 올렸다.
"누울 시간이에요, 아저씨."
카포네는 달랑거리며 들려서 침실로 옮겨졌다. 뒤따라온 밀키가 침대맡의 협탁 서랍에서 약병을 꺼낸다.
"약 드실 시간이에요."
카포네가 말을 잘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약병의 짤랑이는 소리에 주의가 끌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밀키의 손에 들린 약을 바라보았다. 밀키는 약을 입에 물고 침대에 앉은 카포네에게 다가가서 입으로 약을 먹여 주었다. 카포네는 한 번도 자기 스스로 약을 먹지 않았다. 밀크는 멍하니 서서 그 의미에 대해 곱씹는다. 그것이 무능력일지 저항력일지를 내밀히 저울질하며 곰곰히 생각했다. 카포네에게서 입술을 뗀 밀키가 질문한다.
"약 말인데, 꼭 먹여야 할까? 부작용으로 온종일 멍하니 계시잖아."
"발작과 고통을 없애준다잖아. 어차피 낫지 못한다면 덜 고통스러운 게 나아. 지금처럼."
"그게 다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네가 두려워서, 카포네 아저씨를 묶어두는 게 아닐까 생각하거든."
"내가? 공동소유 아닌가? 풀어주면? 너는 감당할 수 있어?"
두사람의 언성이 높아지자 불안해진 카포네가 몸을 부르르 떤다. 그리고는 약간 괴로워하더니 가까스로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 그만해,"
즉시 두 사람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각자의 생각으로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커다란 침대에 세 사람이 나란히 눕는다. 곧 불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양옆 쌍둥이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면서 카포네는 오래도록 깨어 있다.
5.
친구도, 애인도, 가족도 아닌 세 사람의 생활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밀크와 밀키는 매일 아침 공장으로 출근할 때마다 카포네의 배웅을 받는다. 쌍둥이 각각의 이마에 짧은 입맞춤과 셋이서 포옹, 그리고 다녀오겠습니다. 두 사람이 없는 동안 카포네는 햇빛이 잘 드는 거실의 소파에서 느릿느릿 뜨개질을 한다. 그 동작은 너무 느리기 때문에 곧 겨울이 될 때까지 두 사람분의 목도리가 완성될지는 분명치 않다. 그렇게 한참 기다리다 보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밀크와 밀키의 발자국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두 사람은 현관문 앞 계단에서 또 아옹다옹 다투고 있다.
"야, 반장이 이번 달 까지만 나오라는 거 들었어?"
"어떡하지, 돈 없는데. 병원비부터 어떻게 해야..."
"자동차 도둑으로 이직이라도 해야 하나."
"대부님한테 숨겨둔 현금 좀 꺼내달라고 하면 안되나?"
"너는 그게 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카포네는 본의 아니게 얇은 문으로 들어오는 대화를 엿듣는다. 그 대화의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두 사람이 열쇠로 문을 열고 우르르 들어온다. 밀크가 다가와서 몸을 숙여 앉아있는 카포네에게 포옹을 한다. 신발을 벗던 밀키가 소리친다.
"야, 손씻고 만져."
두사람이 손을 씻고 나올 때 쯤에는 카포네도 뜨개질 거리를 내려놓고 방금 들었던 대화의 의미를 느리게 곱씹고 있다. 자신이 숨겨둔 현금이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천천히 복기해보았지만 역시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머리로는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막연한 인식으로 두 사람의 쓰다듬과 입맞춤을 받으면서, 두 사람의 짐이 되어선 안되겠다고 생각한다.
6.
그래서일까,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느지막하게 그친 후, 카포네는 집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도시 곳곳에 숨겨둔 지폐 다발과 금 따위를 닥치는 대로 찾아볼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밀크와 밀키 두 사람이 퇴근 후 현관에 들어섰을 때, 싸늘한 정적만이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현관 앞에 아저씨의 구두가 없다. 현관 앞의 거울에는 당황한 쌍둥이의 모습만이 비쳐있다. 외출이라니, 카포네 아저씨가 출소한 후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야 어떡해? 아저씨가 갈만한 곳이 있어?"
"가면 안되는 곳만 가득한데 뭔소리야."
"파출소에 신고해야 하나?"
"짭새랑 엮이면 골치가 두배야."
두 사람은 무작정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축축한 길바닥을 한참 달리면서 익숙한 모습을 찾아보려 애썼다. 한편 카포네는 현금이 든 비닐 가방을 공원의 동상 아래쪽 틈에서 꺼낸다. 숨겨둔 비자금 모두가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그중 하나쯤은 생각해내는 데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몹시 기뻤다. 그런데 아뿔싸, 집에 돌아가는 길을 알 수가 없다. 여기는 카포네가 잘 알던 동네가 아니었다. 하물며 인지능력이 심하게 손상된 지금은 같은 길을 몇번이고 빙글빙글 돌아도 맞는 길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가을비가 추적추적 다시 내리기 시작해서 하는 수 없이 폐업한 가게의 처마 밑에서 웅크려 앉아 있었다. 가을비가 세 사람을 만나도록 이야기를 전해 준다면 좋을 텐데, 운 나쁘게도 경찰이 먼저 그를 마주치게 되었다. 경찰관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았고, 결국 신분을 확인하려고 말을 걸려는 순간이었다.
"아저씨!"
"찾았잖아요, 휴,"
절묘한 찰나에 쌍둥이가 미아가 된 카포네를 발견했다. 경찰은 잠시 주춤하지만, 역시나 두 사람도 수상하게 생각하여 신분을 확인하려 했다. 쌍둥이는 카포네를 감싸면서 외친다.
"우리 가족이에요!"
"우리 삼촌이에요, 저희는 k 식품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성실한 직원입니다!"
경찰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간단한 사정을 듣더니 알겠습니다, 하고 무심히 자리를 떠났다.
"십년감수했네, 짭새 미친 거 아니냐."
"야, 이제 약 바꿔치기 그만해."
"웃기지 마, 네가 약을 안 먹이니까 이 꼴이 난 거 아니야?"
"넌 그냥 아저씨가 깨어나길 바라지 않는거잖아."
"왜? 너 혼자 독차지하려고?"
"아저씨가 우리한테 뭔데? 가족? 인질 아니고?"
쌍둥이 두 사람의 병적인 의존은 여름부터 방치된 상처처럼 곪아 터졌고, 마침내 그것이 폭발했다. 카포네는 비닐 가방을 들고 두사람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면서 서 있었다. 세 사람은 말없이 비를 맞으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7.
카포네가 가져온 비닐 가방에 든 현금다발은 세 사람이 한동안 지내기에 충분한 돈이었다. 다만 돈 냄새를 맡은 과거 조직원이 가출한 카포네를 발견하고 따라 붙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은 오래 범죄조직 생활을 한 자라면 귀신처럼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이었다. 밀크와 밀키는 집안의 불을 모조리 끄고, 어둠 속에서 소파에 둘러앉아 있었다. 집안의 고요함과 함께 옆집에서 우당탕 물건을 떨구는 소리가 났다.
밀크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가 금세 다시 손으로 비벼껐다. 밀키도 초조한 듯 손에 든 라이터를 껐다 켰다 했다. 밀키가 쉰 목소리로 입을 뗐다.
"아저씨 기억 다 돌아오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씨발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제발 좀."
그 순간, 쿵, 쿵, 쿵, 하고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잠시 간격을 두고,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곤 다시는 쿵쿵대는 노크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괴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열어 새끼들아, 대부님이랑 볼일이 좀 있다고!"
밀키는 현관문 앞으로 가서 숨을 죽이고 문에 난 구멍으로 바깥 상황을 파악했다. 밀크는 부엌에 가서 싱크대 서랍을 열어 식칼을 꺼내 들었다. 카포네는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서 귀를 틀어막고 낡은 시계의 초침을 올려다본다. 밖에 있는 괴한은 총 3명이라고 밀키가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인다. 문 너머로 낮은 웅성거림과 발소리, 그리고 묵직한 지퍼가 달린 가방을 끄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저씨 약은 그만 먹이자."
"지금 그런 소리 할 때가 아니라고."
밀키는 현관에 놓여있던 야구방망이를 집어들었다. 쿵, 쿵, 쿵, 하고 문짝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문 따."
카포네는 무언가에 맞은 듯이 벌떡 일어나서 거실 탁자의 서랍에 든 권총을 꺼내 든다.
"저 사람들 들어오면 우리 끝장이야."
"그럼? 미리 집단 자결이라도 할까?"
문의 잠금장치가 결국 부서지고 문이 열렸다. 들어선 괴한의 얼굴이 낯설지 않은 듯 해 이전에 조직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사실을 모두가 인식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패닉 한 카포네가 총으로 그의 머리를 쏴 버렸기 때문이다. 탕! 아파트에 총성이 울리자 부산스럽던 이웃집들도 일시에 조용해졌다. 현관 앞에 서 있던 밀키가 피를 뒤집어썼다. 나머지 괴한 두 명은 가방도 두고서 쏜살같이 도망쳤다.
"일단 시체부터 치우자."
8.
"돈 받는 거처럼 움직여. 이웃에 신고라도 들어오면 좆되는거야."
밀크는 괴한의 시체에 가루 세탁세제를 뿌린 후, 그들이 들고 온 가방에 넣고, 다시 이삿짐용 캐리어에 처박았다. 그러는 동안 밀키는 잔뜩 뒤집어쓴 피를 씻어냈다. 그리고 전등 교체를 미룬 탓에 깜빡이는 형광등 아래에서 집안에 튄 핏자국을 강박적으로 닦아냈다.
비가 그친 새벽 3시, 막 꺼진 가로등 밑 골목으로 카포네와 쌍둥이가 끌고 나온 시체 꾸러미는 어깨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피를 뚝뚝 흘렸다. 빗물에 엉겨 묻어나는 핏자국은 헨젤과 그레텔이 남긴 부스러기처럼 반짝이고, 공기는 마른 비린내로 축축했다. 시체는 그대로 깊은 하수구 속으로 처박았다. 어차피 제대로 된 인생을 살던 놈도 아닐 테니 찾는 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 사람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이 박살 나 있고 집 곳곳에 아직도 닦지 못한 혈흔이 튀어 있었다.
"그냥 시원하게 집에 불 지를까?"
"진정 좀 해. 오늘은 호텔 가서 자자."
"아저씨 기억 돌아온 거 아냐? 총 똑바로 쐈잖아."
"잠만 잘 거거든? 어차피 지금 약 먹일 수도 없어."
9.
도심 외곽 국도 옆의 싸구려 네온 간판이 기어코 비를 이겨내지 못하고 깜빡였다. 모텔에, 세 사람은 침대 하나짜리 방을 잡았다. 밀키는 불쌍한 척을 하며 프런트에서 대실 요금을 흥정했다. 밀크는 실내에 돈다발과 권총과 약병이 든 낡은 가죽 가방을 내려놓고, 방음 상태부터 창문 잠금장치까지 확인한다. 카포네는 구석 의자에 주저앉아 천장 매연 자국만 멍하니 올려다본다. 좁은 실내엔 표백제 냄새와 담배 냄새가 뒤섞여 있다. 싸늘하게 식은 형광등 아래, 셋의 그림자가 겹쳤다가 갈라진다. 밀크가 먼저 말한다.
"오늘만 버티면 돼. 해 뜨면 사설 이삿짐센터 불러서 집 통째로 뜯어버리고, 남쪽으로 가자."
"집만 어떻게 해서 끝날 일이면 좋겠네."
"남쪽에도 조직 창고가 있다."
쌍둥이 두 사람이 동시에 카포네를 쳐다본다. 출소 이후 이토록 또렷하게 말하는 카포네는 처음 보는 것이다.
"약 드실 시간이 지났어."
"밀크, 그만해. 이거 우리 욕심이잖아."
"너는 욕심이 없는 것처럼 구네?"
"너는 뭐가 두려운 건데? 아저씨가 돌아오면, 우리 곁에 안 있을까 봐?"
"아니라고, 그딴 게 아니라고,"
"밀크."
카포네가 무심히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두 사람이 그를 돌아보았다.
"나는 쉽게 죽지 않을 거야. 약속하마."
밀크는 너무 눈부신 것을 본 사람처럼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밀키는 잠시 후 그 말에 담긴 맥락을 이해한다. 이때까지 밀크가 더 강한 약을 아저씨에게 먹여온 이유는 아저씨가 제정신을 찾으면 죽으려 할까 봐 였던 것이다.
"자, 약 먹을 시간이야."
카포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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