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다자, 쿠니다자, 오다자 함유
tw: 죽음, 신체 훼손
0.
다자이 오사무가 죽었다!
장례식은 여러모로 화려했다. 자살인가 타살인가는 의견이 분분하였고 둘 다라는 말도 떠돌았다. 확실한 건 그 자살 마니아가 이번엔 정말로 죽음을 성사시켰다는 것이고, 그 장례식이 요코하마 전역을 마비시킬 정도로 기묘하고도 화려한 대사건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원수와, 원수의 원수와, 원수의 원수의 원수... 그렇게 이어지는 원한과 인연의 만남, 그 사슬이 장례식장을 장식했다. 망자의 혼이 그 난장판을 봤다면 죽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기뻐했을 것이 뻔하다. 그런 고인의 모습을 떠올린 쿠니키다가 상복 차림을 하고서 뻐근한 목덜미를 잡았다.
"이 자식은 죽고 나서도 뒤치다꺼리를 만들어."
쿠니키다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피로, 그리고 기묘한 그리움이 섞였다. 생전에도 다자이는 항상 이렇게 남은 사람들의 삶을 개판으로 만들곤 했다. 누가 자살 기도를 하루 세 번이나 하냐고. 누가 적진에서 인질극 중간에 농담을 할까 보냐. 이젠 그런 난감한 일들도 끝났다고 생각하면 시원섭섭했다.
이능특무과와 포트마피아, 무장탐정사가 동시에 화환을 보내는 장례식이란 흔치 않은 구경거리여서 호사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장례식은 요코하마에서 거행되었다. 그의 관이 대형 무개차에 실려 시내를 천천히 통과했다. 그 뒤를 따르는 차량에는 이능특무과의 대표자들, 무장탐정사 사원들이 있었다. 차량 행렬 뒤를 따르던 버스에는 여러모로 그와 얽힌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 안엔 다자이의 전 애인, 전 동료, 전 감시자, 전 상사, 그리고 어쩌다 구속된 적 있는 그의 스토커까지 타고 있었다. 누구 하나 누가 오라고 초대한 것도 아니었다.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동시에 조의를 표한다는 이 불가해한 조합은 그 자체로 고인의 인생을 압축한 상징적 장면이었다.
정식 장례 행렬은 아니었지만, 이런 저런 사람들이 구경하러 연도에 늘어섰다. 탐정사 사장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수백명이 모인 다자이의 묘지는 고인의 바람대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 만들어졌다. 흙을 덮으면서도 정말이지 모두가 믿기지 않아 하면서 멍하니 있었다. 그러나 흙은 덮였다. 마침내 땅은 입을 다물었고 연극은 막을 내렸다. 그 뒤로도 무장탐정사 사무실에서는 무심코 다자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암흑 속을 달리는 메시지처럼 울렸다. 그럴 때마다 모두가 순간 멈칫했고, 금세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 골칫덩이 자살애호가는 이제 여기에 없다.
1.
어둠이 이 도시에 앞으로 다가올 운명을 알고 있기라도 할까?
보라빛 밤하늘은 병든 짐승처럼 무겁게 침묵했고, 새하얀 달빛은 의심 많은 순찰견처럼 자꾸만 그를 훑었다. 나카하라 츄야는 무덤 앞에 쪼그려 앉아 무심한 얼굴로 땀에 젖은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잡히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삽질에 어깨는 결리고 손목은 욱신거렸다. 땀으로 미끄러진 삽자루는 몇 번이나 손가락에서 빠져나가며 허공에 흙을 흩뿌렸다.
"젠장, 이런 짓을..."
짓이겨진 풀 냄새와 흙냄새가 퍼진다. 곰팡내와 피 냄새의 아득한 혼합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사이로 썩은 나뭇잎, 죽은 곤충의 껍질, 부서진 유리 조각 같은 것들이 흙 속에서 반짝였다. 시간은 모순덩어리였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면서도, 너무 느리게 굴렀다. 뺨을 타고 흐른 땀이 턱을 지나 옷깃으로 스며들었고, 등에서는 줄줄이 땀이 흘러내렸다. 왜 그토록 효율적인 이능력을 두고, 굳이 손으로 삽을 쥐고 이러는가?
그토록 싫어했던 악우의 시체를 지금 이 밤중에 파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 또한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자신도 모든 이유를 알지는 못했다. 그저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낮에 그의 잔상을 봤다. 한낮의 환상인가. 역시 뭔가 이상하다. 죽은 녀석이 정말 죽은 게 아니라면 살아 있는 쪽이 뭘 잘못 알고 있는 거다. 그런 직감이 그의 손을 직접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체가 흙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이 구름 사이로 흘러내리며 그 몸을 비췄다. 다자이 오사무의 놀랍도록 우아하고 아름다운 손가락이다. 생전에 그가 장난하듯 머리를 매만지고, 총을 들어 올리고, 담배를 만지작거리던 손이다. 그 실루엣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선명했다. 그리고 마치 한 번도 죽은 적 없다는 듯 온전했다.
온몸에 전율이 뻗쳤다. 감각의 대역폭이 한계까지 확장되는 것 같은 느낌. 생과 사의 경계가 지금 이 무덤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다자이는 죽었었다. 확실히 죽었다. 그러나 시체는 썩지 않았다. 피부도, 옷도, 손톱도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나카하라는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기괴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살포시 웃음이 터졌다. 이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웃음이었다. 슬픔도, 기쁨도 아니다. 공포감도 절망감도 아니었다. 그저 다자이다운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곧 멈췄다.
문득 느낀 시선을 깨닫고 그의 눈이 시체의 목 쪽으로 향했다. 다자이의 얼굴이, 아니,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시체는 고요하게 누워 있었고 몸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으나, 목이 없었다.
등줄기를 따라 짜르르한 한기가 짧게 한차례 지나갔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츄야는 문득 다자이가 생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한 사람이 반드시 자기 판단이나 실천에서 일관적일 필요는 없어. 오히려 그런 내적 일관성이나 무모순성 따윈 집어치우고, 그때그때 다른 인간이 될 수 있어야 사회에서 살아남지. 아마도 중요한 건 언제나 구체적인 이익이야. 그걸 잘 아는 놈이 살아남으니까..." 다자이는 늘 스스로를 부정하면서 살았다. 자기를 자살광이라 부르면서도, 누구보다도 생에 미련을 가진 듯 행동했고, 선의와 냉정, 헌신과 조롱 사이들을 줄타기하듯 오갔다. 그건 꼭 모순적이라고 가차 없이 표현하기보다, 다자이만의 독특한 생존 방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정체성의 변형, 목적에 따른 자아의 유연한 분할 말이다. 그래서다. 지금 이 시신조차도 그가 세운 작전의 일부일 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그는 재빨리 준비해둔 거대한 캐리어를 펼쳤다. 그 안에, 목 없는 다자이의 시신을 접어 넣었다. 관이 아닌 여행 가방에 실려 또 한 번 다른 곳으로 떠나는 다자이의 처지를 생각했다. 이것 참 그 자식답군. 그는 입을 꾹 다물고서 캐리어를 끌기 시작했다. 바퀴가 진흙 위를 지나며 질척질척한 소리를 냈다. 달빛은 여전히 그를 쫓고 있었고 발밑에서는 웅크린 도시가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카하라 츄야는 느꼈다. 이 모든 건 끝이 아니라 어떤 시작이다. 다자이의 장례식에서는 막이 내린 게 아니라, 무대가 전환된 것이었다.
그 어둠은 도시 위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
2.
다자이 오사무가 죽었다!
첫머리와 똑같은 말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나도 안다.
이 문제는 여전히 너무나 중요하고, 지금 요코하마의 사회 상황을 사로잡고 있다.
다음의 보고서를 보도록 하자.
요코하마 이능 재난 사태 보고서 (극비)
- 문서번호: YK-CR0199
- 작성일: 20XX년 8월 8일
- 작성자: 이능특무과 분석관 A-47
- 등급: 최고등급 기밀
- 분류: 사념체 / 이능력 폭주 개체 / 불특정위치출현형
[1] 사태 개요
2025년 7월 하순부터 요코하마 전역에서 발생한 '죽은 자들의 부활' 현상은, 현재까지 총 198건의 목격 사례, 42건의 공식 보고, 그리고 6건의 공식 영상자료(CCTV, 드론)가 확보된 상태이다. 해당 사태는 단발적, 비선형적으로 도시 전역에 발생하고 있으며, 동일한 시공간 내에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 동시에 감지되는 등, 고차원의 이능력 개입이 의심된다.
본 보고서는 이 사태의 중심으로 추정되는 '소녀형 개체' 및 그녀가 유발하는 이능력 현상에 대한 초동 분석을 담고 있다.
[2] 중심 개체: 코드명 "마녀"
- 성별: 여성
- 연령: 약 16세 추정
- 확인된 신원: 없음 (DNA 대조 불일치)
- 상태: 의식이 희박하거나 결여된 듯 보이며, 일정한 언어 또는 감정 반응 없음.
- 행동: 도보 이동 중이나, 해당 동선이 비선형적이며 때때로 순간이동에 가까운 지점형 출현이 관측됨.
- 복장: 회색 교복 차림과 학생용 구두.
- 일명: "마녀", "죽음의 아이", "발할라의 사자"
[3] 이능력 개요 및 특이 현상
1. 죽은 자들의 부활
- 소녀의 반경 약 15~30m 내에서 사망한 지 수십 년이 경과한 자들까지 부활하는 현상이 반복됨.
- 해당 부활은 무작위적이지 않으며, 감정적 잔류가 강한 시체, 도시의 사건에 연루된 자, 혹은 이능력자일수록 고빈도로 발생함.
- 부활한 자들은 대부분 기억을 유지한 채 되살아나며, 그 감정 상태에 따라 재회 혹은 복수 등의 행위를 자율적으로 수행함.
2. '점'으로 출현하는 이동 동선
- CCTV 분석 결과, 소녀의 이동 궤적은 선형 궤적을 거의 형성하지 않으며, 불연속적인 점의 형태로 출현한다.
- 이는 물리적 이동이 아닌, 도시 전역에 연결된 특이한 역장 내부를 통한 이동 가능성을 시사함.
- 현재까지 포착된 점 형태 출현지점은 항구, 병원 지하 영안실, 학교 체육관 뒤편, 공동묘지 등 죽음이 집중된 장소에 집중됨.
3. 이능력의 흡수 및 누적
- 이능력자 주변에서 해당 인물의 능력 소실 및 소녀 개체의 반응 증가가 관측됨.
- 이로 인해 마녀 개체가 단일 사념체가 아니라, 여러 이능력의 누적 덩어리일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됨.
- 일부 관측자는 이를 "이능력자들의 감정, 기억, 기술, 사념이 하나의 중심에 모여 형성된 집합적 괴물"이라 표현.
[4] 사회적, 심리적 여파
- 부활한 자들로 인해 도시 전역에 혼란 가중. 특히 다음과 같은 이중성이 강하게 나타남:
- 죽은 가족과 재회한 시민들의 감격과 혼란
- 부활한 원한 관계자(살인자, 피해자, 기타범죄자)에 의한 복수극의 연쇄 작동
- 범죄율이 급증하였으며 사망 > 부활 >보복 > 재사망이라는 루프 현상이 도시 곳곳에서 발생함.
- 시민들은 공포와 광기 그리고 일말의 희망 속에 방황하며, 도시 전역이 일종의 감정 폭주 구역으로 전환되는 중.
[5] 철학적, 문화적 해석
- 일부 종교인들과 저널리스트들은 해당 현상을 다음과 같이 해석 중:
- "발할라의 여신이 요코하마에 내려왔다."
- "이능력 문명에 대한 심판자이자 회수자."
- "모든 죽음과 능력을 수확하는 사자."
- 일부 이능철학 연구자들은 마녀 개체가 도시 이능력자의 '집단적 죄의식이 만든 존재'일 가능성도 제기함.
[6] 대응 방안 및 권고
- 마녀 개체에 대한 물리적 제압은 현재 불가능 판정. (총기, 이능력 모두 무효화됨)
- 유일한 가능성은 '사념 공명 차단 장치' 또는 이능력 해체 능력자의 투입
- 이능특무과, 무장탐정사, 포트마피아의 공동 대응 전선 구성 필요성 제기됨, 그러나 명분이 없어 어려움.
"죽은 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살아생전 때보다 더 의지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익명의 관찰자, 제3 기록일지 중 발췌.
※ 이 문서는 외부 유출이 금지되며, 사본 제작 및 발췌는 엄격히 제한됨.
3.
다자이의 시체는 목이 없었다. 나카하라는 그걸 안고 계단을 올랐다. 어쨌거나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외투를 벗지도 않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저벅저벅 걸어가 침대 위로 그 시체를 던져 눕혔다. 침대 시트 위로 다자이의 잘려 나간 목덜미가 축 늘어졌다. 목의 잘린 단면은 흑요석을 자른 것처럼 검고 매끄럽다. 그 비현실성을 보고 있자니 숨을 쉴 때마다 속이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폐를 가득 채우는 고요한 공기가 더 이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바깥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각자 어딘가로 달아났고, 골목은 불길로 물들었다. 수백 개의 사이렌이 서로를 밀쳐내며 울부짖었다.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아비규환이었다.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누가 지금 어디서 불을 지르고 있는지조차도 아무도 모를 만큼 혼란스러웠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핼러윈이자 끝없는 광란이다.
그 와중에도, 나카하라는 오직 한 사람, 아니 한 존재만을 찾아야 했다. 그는 소녀의 모습을 한 그 이능력 사념 덩어리를 시급히 찾아야만 했다. 지난번 그녀를 마주쳤을 때에 나카하라의 이능력은 고스란히 흡수되어 사라졌다. 이능력이 없어도 충분히 강한 나카하라지만, 평소 몸에 밴 습관들이 이능력 사용을 전제로 한 행동들이라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마녀는 마치 그림자처럼 아른거리지만 절대 잡히지는 않았다. 마녀가 나타나 숨어있을 법한 곳을 온종일 뒤지고 땀을 흘렸지만 손에 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를 붙잡아 이 다자이의 몸에 닿게 한다면 무언가의 이능력 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가능성을 시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비에 젖은 보도 위에서 나카하라는 담배를 꺼냈다. 불씨를 붙이기도 전에 바람이 훅 하고 불어와 담배가 젖었다. 욕설이 입안에서 맴돌았다가 녹았다. 분명히 어딘가에 있다. 이 도시의 부패한 숨결과 사람들의 무방비한 공포 속에 그 마녀는 눅눅히 스며들어 있다.
"숨을 수 있다고 생각했냐."
나카하라는 빗물로 바닥이 번들거리는 골목을 가로질러 유유히 걸어갔다. 건물의 어둠 속에서 네온사인이 깜빡이며 시들어갔다. 차가운 콘크리트에 내린 비 냄새와 매스꺼운 석유 냄새가 공기 속에서 뒤엉켰다.
멀리서 아이 울음 같은 것이 들렸다. 나카하라는 걸음을 멈췄다. 평범한 아이 울음소리라기에는 그 울음이 너무 균일하고 기괴했다. 같은 간격과 같은 높낮이로 기계처럼 반복되는 소리다. 그는 가만히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아직 남아 있는 총탄을 확인했다. 이능을 잃은 지금은 무의미하지만 손끝에 닿는 차가운 금속이 조금이나마 안정감을 줬다.
울음소리가 그쳤다. 대신 낮게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는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나카하라가 반쯤 몸을 돌리기도 전에 뒷덜미를 스치는 한기가 심장을 뚫었다. 뒤돌아보니 그 소녀는 이미 사라지고 흔적하나 없었다.
4.
소녀는 사라졌고 그 대신 공기에는 아직 그 싸늘한 이능력 폭풍의 잔향이 서려 있었다. 늦은 밤, 나카하라는 피곤함에 절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침대 위엔 여전히 목 없는 다자이의 시체가 다소곳이 누워 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나도 모르겠다."
그는 중얼거리며 시체 옆, 침대에 앉았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차가운 손을 집어 들고, 무심코 손등에 입을 맞췄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두 사람의 습관적 정사 후 잠든 다자이를 지켜볼 때마다 하던 꿈나라로의 작별 인사다.
그런데! 그 순간 퍽 하고, 시체의 몸이 벌떡 일어났다. 나카하라는 반사적으로 펄쩍 뛰고 물러났다.
"씨발! 뭐야 이건!"
다자이의 머리는 여전히 없었지만 대신 두 팔이 천천히 움직이며 침대 머리맡의 메모지를 더듬었다. 펜을 집어 든 손이 또박또박 글씨를 썼다.
[네가 나를 그리워할 줄은 몰랐네, 츄야♡]
나카하라는 공포와 경악과 분노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다.
"지금 장난하냐?! 네놈 목은 어딨어!?"
다자이의 펜이 부드럽게 움직여서 우아한 필치를 그려냈다.
[목이 없는 게 어때서? 말은 못하지만, 츄야 놀리기엔 충분한데.]
"미친놈아...!"
나카하라는 골이 아파와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방 안의 어둑한 공기가 묘하게 일렁일렁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전자음 같은 바람 소리, 이능력 폭풍의 잔여물인 진동이었다. 다자이는 또 또박또박 글씨를 썼다. 그리고 메모를 나카하라에게 쓱 내밀었다.
[죽을 때, 마침 이능 특이점 역장에 걸려 있었거든. 절반은 저승에, 절반은 이승에 걸쳐 있는 상태랄까.]
나카하라는 기가 막혀 박박 이를 갈았다.
"그래서 이 꼴로 살아있다는 거냐?"
[응. 덕분에 머리 없이도 너랑 놀 수 있네.]
펜 끝에서 'ㅎㅎ'가 써 내려가는 걸 본 순간, 나카하라는 참지 못하고 메모지를 구겨 방구석으로 내던졌다.
"죽여버린다!!"
목이 없고 이젠 메모지도 없는 다자이가 단지 어깨를 한번 으쓱, 했다. 이미 반쯤 죽은 사람을 어떻게 또 죽일 것인가?
5.
쿠니키다는 퇴근 후 현관문을 열었다. 방 안 한가운데, 탁상 위에 놓인 무언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자이의... 머리통이었다.
"......뭐, 뭐야 이건."
분명 간밤에 꾸었던 악몽이 떠올랐다. 간밤에 그는 그 어둡고 축축한 묘지를 헤맸다. 삽을 들고 다자이의 무덤 뒤편으로 가, 비석 뒤에 놓인 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는 꿈 말이다. 쿠니키다는 끔찍한 꿈에서 깨어났다. 땀에 젖은 채 깨어났을 때는 단순한 악몽이라 여겼다.
그런데,
"쿠~니키~다 군, 그동안 내가 없어서 많이 심심했지?"
머리통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으아악!"
쿠니키다는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집에 보관하던 책과 물건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물건에 부딪힌 곳이 아려왔다. 아픔이 알려준 바 이건 악몽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었다. 다자이는 모든 순간 입을 쉬지 않았다.
"저녁 메뉴는 뭐야? 나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좀 더 시원하게 헹궈줘. 거기, 귀 뒤쪽은 제대로 안 씻었잖아."
"수건은 이거 말고 더 부드러운 거 없나? 나 같은 미인한테 피부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리고 말이야, 샴푸는 좀 더 향 좋은 걸로 바꿔주면 안 돼?"
"내가 비록 몸이 없다고 해서 대충 대하면 안 된다구~"
쿠니키다는 반가운 마음 반, 익숙한 분노 반으로 머리가 띵해져서 이를 악물었다.
"넌 지금 머리밖에 없잖아. 관리가 아니라 방부처리나 신경 써라."
결국 쿠니키다는 사흘간 매일 다자이의 머리통과 함께 식사했고, 매일 다자이의 머리도 감겨주고, 또 수건으로 정성껏 말려줬다. 머리통과 이어진 목의 절단면은 방부처리라도 한 듯, 매끄럽게 빛나는 검은 흑요석 같았다.
며칠 후, 그는 혼자 더는 이 진실을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결국 탐정사 사무실로 문제의 머리통을 가져왔다. 가방에 넣을 때 숨이 막힌다, 움직이니 멀미 난다고 어찌나 찡찡대던지 테이프로 입을 막아야 했다. 쿠니키다가 고해를 하고서 다자이를 덜렁 꺼내니, 머리통 주변으로 탐정사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오... 진짜 다자이네."
요사노가 별일 아니라는 듯 슬쩍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목 절단면이 참 예쁘네요... 반짝반짝 해요!"
켄지는 진지하게 아름다운 점을 감상했다.
"흠... 장식품으로도 나쁘지 않은데? 꼭 박제된 것 같아요."
다니자키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다들 반응이 너무 무심하지 않아요?! 다자이 씨가 살아 돌아왔는데!"
아츠시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아츠시군, 진정해. 이건 다자이 씨다운 복귀라고 생각해."
쿄카가 그런 아츠시를 토닥여 주었다.
"그런데 이 자식 몸은...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쿠니키다의 말에, 눈알을 데구르르 굴리던 다자이의 머리통이 싱긋 웃었다.
6.
머리는 무장탐정사에 있고, 몸은 포트 마피아에 있다. 그 기괴한 분리 상태가 며칠째 이어졌다. 사건의 기묘함과 황당함에 결국 이능력 특무과까지 가세했고, 세 조직이 같은 테이블에 앉는 초유의 광경이 펼쳐졌다. 특무과의 담당관이 두꺼운 파일을 테이블에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린 지금 전례 없는 이능력 역장 불균형 사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도시를 이대로 둘 순 없어요."
쿠니키다의 옆에는 여행용 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 열린 가방 안에는 아주 기분 나쁜 미소를 띤 다자이의 머리통이 들어 있었다.
"쿠니키~다군, 이렇게까지 날 소중히 챙겨줄 줄이야."
"제발 입 좀 다물어라."
나카하라의 옆에는 다자이의 몸이 느슨하게 앉아 있었다. 목덜미 위로 아무것도 없는 그 모습은 보통 사람이라면 비명 지르고 도망칠 광경이었지만, 나카하라는 시큰둥했다.
“아 진짜 몸만 있어도 거슬리네. 뭔가 재수 없는 기운이 그대로야.”
"그래서... 머리랑 몸을 어떻게 합칠 거죠?"
쿠니키다가 대뜸 물었다.
“단순히 붙이면 끝날 문제는 아니야.”
특무과의 능력자가 손바닥 위에서 작은 이능력 구체를 굴렸다.
"저게 갈라졌을 때의 상태인 <죽은 자와 산 자 사이>라는 역장 균형을 맞춰야 하거든. 아니면 이능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나카하라가 팔짱을 끼며 하, 하고 비웃었다.
"폭발해도 상관없지 않나? 오히려 세상에 이익일지도."
"아아, 너무해. 이렇게 날 매도하다니, 우울해진다니까."
다자이가 연극 조로 말했다.
"넌 머리만 있어도 정신 사납다!"
쿠니키다의 이마에 힘줄이 불거졌다.
이능력 전문가의 여러 가지 복잡한 기술적 조율 끝에, 드디어 이능력 역장 속에서 머리와 몸이 서로를 향해 끌려갔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찰나의 침묵이 공간을 가로질러 갔다.
"와~!"
모두의 탄성과 함께, 머리와 몸이 정확히 맞물리며, 한 사람의 다자이가 완성됐다. 피도 흉터도 없이, 마치 처음부터 온전했던 사람처럼 합쳐졌다.
"오... 성공했네요."
안경을 쓴 특무과 관계자가 감탄했다. 다자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역시 요코하마는 나 없이는 안 굴러간다니까!"
그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활짝 벌린 채로 대환영을 기대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냉담한 시선뿐이었다. 쿠니키다는 이마를 짚으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나카하라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둘은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했다. 역시 이놈은 하나로도 충분한 민폐 덩어리다.
7.
늦은 밤의 어둠이 도시를 삼켜버린 듯 고요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약간의 불온함을 품고 있었다. 밤안개가 깔린 부둣가 도로 위를 쿠니키다의 차가 매끄럽게 달렸다. 운전석에서 쿠니키다는 시선을 전방에 고정한 채 이마에 힘줄을 세웠다. 조수석에는 다자이가 팔짱을 낀 채 창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쿠니키~다군, 이렇게 같이 데이트하는 거, 오랜만이지 않아?"
"수사다. 데이트가 아니라."
"그럼 수사 데이트라고 하지 뭐."
"그 입 좀 다물어, 그런데 마녀가 대체 어디에 나타난다는 거지?"
쿠니키다가 물었다.
"그게 말이지~"
다자이는 한껏 느릿하게 말꼬리를 끌었다.
"예측 불가능한 곳, 예측 불가능한 시간, 예측 불가능한 사람 앞에."
"즉, 아무 데서나 나타난다는 소리군."
"맞아! 역시 쿠니키다군, 대단해, 대단해~"
쿠니키다는 대답 대신 가속 페달을 더 밟았다. 부두 근처, 버려진 창고 지대부터 뒷골목의 낡은 고층 빌딩까지, 그들은 ‘마녀’가 출현할 법한 곳을 샅샅이 훑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지만, 마녀의 흔적은 없었다. 그보다도, 골목마다 다른 사건이 터지고 있었다. 어디선가는 불이 나고, 다른 쪽에서는 이능력자들 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또 다른 곳에서는 갑자기 들개 떼가 거리를 점령했다.
"이건... 마녀의 짓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다자이가 문득 중얼거렸다.
"아니, 그냥 너라는 재앙이 타고 다니는 차 주변에만 사고가 몰리는 거다."
그렇게 말하는 쿠니키다의 목소리는 점점 굳어졌다. 두 사람은 낡은 하수도 입구 앞에 차를 세웠다. 바람이 불자, 안에서 이능력 역장 폭풍 특유의 미묘하게 전자음 같은 금속 긁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니키다는 권총을 꺼내 들었고, 다자이는 실실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역~시 이런 데서 목표물이 튀어나오는 법이지."
그러나 하수도 안에서 나타난 건 마녀가 아니라, 전혀 다른 조직의 현상금 사냥꾼인 이능력자 무리였다. 그들은 이미 무언가를 쫓고 있었고, 그 목표물이 바로 '마녀' 인 듯했다. 그 마녀는 이능력 특이점 역장의 중심에서, 검은 그림자처럼 벽을 타고 달아났다.
"어라라? 일이 꼬였네."
다자이가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쿠니키다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 당장 추격한다!"
다자이와 쿠니키다는 하수도의 질척하고 미끄러운 통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마녀를 쫓는 다른 조직과의 충돌, 함정 같은 역장의 변동, 그리고 다자이 특유의 사고뭉치 행각이 겹쳐, 추격전은 순식간에 꼬여만 갔다.
8.
하수도 안은 곰팡내와 비릿한 녹슨 금속 냄새가 뒤섞여 숨이 막힐 듯했다. 쿠니키다의 손전등 불빛이 앞을 비추자 물기로 번들거리는 벽 위로 검은 그림자가 미끄러져 달아났다.
"저기다!"
쿠니키다가 소리쳤다. 마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인간의 움직임이 아닌듯한 기괴한 움직임을 보였다. 발이 거의 땅에 닿지 않은 채 주변의 그림자와 하나가 되어 둥둥 떠서 좁은 통로 벽을 타고 전진했다. 그것의 형체는 교복을 입은 소녀였지만, 인간성이 결여된 모습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불타는 등불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다자이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얼굴로 쿠니키다의 뒤를 달렸다.
"저거, 지난번 내가 능력 뺏겼던 그 애 맞아. 다시 보니 더 귀엽네."
"입 다물고 뛰어라!!"
그러나 추격은 순탄치 않았다. 마녀의 뒤를 쫓던 다른 조직의 이능력자 셋이 옆 통로에서 튀어나왔다. 그 중 한 명이 손을 휘두르자, 하수도 벽이 부서져 쓰레기와 오수가 폭포처럼 쏟아져 길을 막았다.
"이봐, 이러다 놓치잖아!"
다자이가 소리쳤다.
"너는 그게 아쉬운 거냐, 목숨이 아쉬운 거냐!"
쿠니키다는 수첩을 꺼내 순식간에 나이프를 만들어 뽑았다. 그 순간, 마녀가 움직임을 멈추더니 고개를 갸웃하고 돌렸다. 순간 하수도 전체가 심연처럼 어두워졌다. 쿠니키다의 손전등은 아직 켜져 있었지만 빛이 1미터 앞도 뚫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마녀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역장의 파동이 곧 임계점에 도달합니다."
그녀가 손을 내밀자 하수도 벽과 바닥이 뒤틀리며 검은 칼날 같은 그림자들이 솟아올랐다. 한순간 모든 방향에서 날아드는 그림자의 창이 쿠니키다와 다자이를 덮치려고 했다.
"하하, 이거 위험하네."
다자이는 전혀 긴박하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잠깐 쿠니키다 쪽을 보더니, 씩 웃었다. 쿠니키다는 그 순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저 미소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래도 이런 건 팀워크로 피하는 거지?"
쿠니키다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으로 그를 노려봤다.
"...네가 팀워크라는 단어를 알 줄은 몰랐군."
9.
쿠니키다는 재빨리 몸을 숙여 그림자 창을 피했고, 다자이는 거의 장난스럽게 허리를 젖혀 날아오는 창을 스치듯 피했다. 검은 창들이 벽에 박히자 눅눅한 돌벽이 비명을 지르듯 갈라졌다.
"아름다운 소녀여! 지난번, 내 능력을 삼켰었지요?"
다자이가 연극적인 대사를 뱉으며 어둠 속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이번엔 돌려받으러 왔어."
다자이는 입술로 매력적인 호선을 그리며 씨익 웃었고, 마녀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하수도 벽면이 종잇장처럼 뒤집히며 쿠니키다의 발밑이 붕 떠올랐다. 중력 방향이 반대로 뒤틀려 쿠니키다가 천장 쪽으로 쏠리듯 떨어졌다. 예상컨대 이것은 그녀가 빼앗은 나카하라 츄야의 이능력이었다. 쿠니키다가 이를 악물고 허공에서 철봉 타듯 배관을 잡았다.
"다자이! 이거 장난이 아니..."
그의 말이 끊겼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인간이, 똑바로 서서 그 마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녀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너는, 그때, 죽었어야 했다."
그 감정의 기색이 전혀 없는 한마디에 쿠니키다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다자이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엔 아까와는 조금 다른 기운이 서려 있었다.
"아, 그 얘기? 내 머리랑 몸을 갈라놓은 게 너였구나. 뭐 결과적으로 나쁘진 않았어. 명분이 되었으니까."
쿠니키다는 순간적으로 이해했다. 목이 잘린 다자이의 시체, 방부 처리된 듯한 흑요석 같은 절단면, 그리고 특이점 역장의 영향들이 머릿속에서 짜 맞춰졌다.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라, 마녀의 이능력 한계를 알아보려던 실험대였을 것이다.
"너는 목적이 뭐..."
쿠니키다가 말을 잇기도 전에, 마녀가 왼손을 높이 들었다. 어둠이 폭발하듯 퍼지며 하수도 전체를 삼켰다. 그리고 시야가 닫히는 마지막 순간에 쿠니키다는 마녀의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쉿, 비밀."
곧 두 사람은 터진 하수구의 바깥에서 눈을 떴고, 진흙으로 엉망진창이 된 채로 두 사람의 집으로 돌아갔다.
10.
며칠 후, 결국 세 조직의 경보가 동시에 울렸다. 이능특무과의 요원들은 무전기로 좌표를 찍고, 포트마피아는 비상 호출로 병력을 모아 대형트럭에 폭발물과 장비를 싣고, 무장탐정사는 냉정하게 동선을 계산해 현장 주변을 봉쇄했다. 도시는 금방 전쟁터처럼 변했다. 네온은 깜빡이고 사이렌 불빛이 하늘을 긁었으며 사람들은 안전을 찾기 위해 실내에서 숨죽였다.
거리 위는 혼돈의 잔향으로 가득했다. 연기처럼 흩어진 그림자, 무너진 간판, 불타다 만 자동차까지 마치 전쟁 영화의 세트장 같았다. 그 모든 것들이 마치 한 장의 인상파 회화처럼 뒤엉켜 있었다. 멀리서 정돈이 덜 된 붉은 머리 청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를 본 다자이는 본능적으로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몸을 밀고, 팔을 휘저으며, 쓰러진 사람과 잔해를 피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심장은 요동쳤고, 눈은, 노을 아래의 사람들 머리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붉은 머리칼을 향했다. 혹시라도 잘못 볼 리 없는, 꿈에서 백만번도 더 봤던 그 머리칼이다.
그러나 그의 발길은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멈칫했다. 어깨를 부딪힌 상대는 소녀였다. 짙은 검은 머리칼과 반쯤 흐릿하게 빛나는 눈의, 회색 교복을 입은 소녀였다.
"죄송합..."
주변의 모든 움직임이 일순간 멈춘 듯했다. 사람들은 그대로 멈춰 서고, 유령들은 연기처럼 공중에서 감미로운 무의미로 흩어져 사라졌다. 곧, 거리 위에는 오직 다자이 뿐이다. 붉은 햇살이 빌딩의 유리창을 스치며 부서졌고, 분홍빛 구름이 잔잔하게 흐르며 거리를 감쌌다. 모든 사자 소생의 마법은 멈췄고, 이 세계의 시간마저 숨을 죽인 듯했다. 그는 마녀와 부딪힌 것이다. 다시 본 해 질 녘의 빛이 부서지는 거리에 붉은 머리의 그는 없다.
다자이의 입은 잠시 열렸다가, 이윽고 다시 닫혔다. 그의 얼굴에는 쓸쓸하지만 묘하게 평온한 미소가 번졌다. 마치 세상의 혼돈과 폭주가 단지 하룻밤 꿈인 것 처럼, 아무 일 없던 듯이 고요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살아있다!
'문스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모리다자, 츄다자] Edge of Eighteen (0) | 2025.08.09 |
|---|---|
| (스압)문스독 썰 백업 2020~ (0) | 2025.08.09 |
| [오다자]푸른 바다 검은 눈 (0) | 2025.08.09 |
| [오다자/ 츄다자/ 오다드림] t.s.n.c’ (0) | 2025.08.09 |
| [오다자]고양이의 저주 (0) | 2025.08.09 |


